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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딴따라 문학샘

요즘은 "시"를 가르치고 있다. 시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라는 "운율과 심상". 첫 시간에 리쌍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같이 들었다. 운과 율을 설명하면서 "특정 위치에서 특정 음운이 반복해서 등장하게 되면 운이다"라는걸 설명하려고 그랬다. 사실은 날씨도 꾸물꾸물한데다 아이들도 모의고사 끝나고 좀 쳐진 것 같길래 노래 한 번 들으려고 그랬다. 한 손을 흔들며 박자를 탔다. "Yo, Boys and girls! 리듬 좀 타냐?!" 아이들은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낸 쪽팔렸다.

내일은 민요를 배우는데 학습활동에 군가가 수록되어 있다. 곡목은 팔도 사나이. 교과서에 왜 군가가 실려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교과서에 실려있고, 다른 반 수업을 하시는 선배 교사님들이 가르친다고 하시니 일단 나도 가르쳐야 한다. 비정규직 교사에겐 아직 큰 목소리를 낼 만한 여력이 없다. 어쨌든 내일 문학 시간에는 "보오~라암촤안~! 하아루우이일을~!" 이라며 절/도/있/게 군가를 불러볼 생각이다.

쪽팔려도 할 수 없다.
수업시간에 쳐 자는 녀석들을 보는 것보단 내 얼굴이 화끈해지는게 백만 배는 더 나으니까.

엊그제는 한 학생이 나를 "정색의 달인"이라고 불렀다. 내가 수업할 때 혹은 우연히 만났을 때, 다른 사람들이 말하면 절대 웃음을 숨길 수 없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뻥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고 했다. "문학이 재밌다는건 진짜 뻥 아니야."라고 했지만 "거울 좀 보세요. 순진한 우리들에게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는 거에욧!"이란다. 에이씨.. 그건 진짜 뻥 아닌데...

아이들에게 제대로 약점 잡힌 것 하나. 내 키. "우리 시대"에는 내 키가 대한민국 표준 남성 키였다고 주장하지만 아이들은 절대 믿지 않는다. 내가 애인과 헤어진 이유도 키 때문이고, 정색을 하며 뻥치는 것도 작은 키 컴플렉스 때문이고, 감성이 풍부한 것도 키가 작아서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고, 별명이 정우성이라는둥, 김정훈이라는둥의 헛소리를 하는 것도 키 작은걸 커버하려는 술책이란다. 목소리 좋고, 얼굴 잘생기고, 피부 좋고, 수업 재밌고, 성격까지 좋으니 뭐가 부족하냐는 내 자랑에 그들은 "키가 작잖아요. 쯧쯧." 한 마디로 전세를 역전시켜버린다.

이제서야 교생실습 때 내 모교의 스승님이 해주셨던 한 마디가 뼛 속으로 스미는 느낌이다.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때론 쇼를 할 필요가 있어."
(그 선생님은 별명이 "라이거"였는데 떠들거나 조는 학생이 있으면 다가가서 귀를 물었다.)

쇼가 중심인 수업은 문제가 있지만 쇼를 곁들인 수업은 즐겁다. 나도 학생도.
즐거운 문학, 즐겁게 공부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