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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야호! 방학이다!~

드디어! 방학이다!! 사실 방학한지는 벌써 1주일이 넘었지만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던 보충수업이 오늘 끝났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선생님으로서" 맞이하는 첫 방학인지라 내가 더 신난다.

보충수업 마지막 날인데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학교갈 생각이 없어지는 건 당연지사. 조례하러 들어갔더니 3명 앉아있었다; 그나마 2교시 내 수업 때는 그럭저럭 녀석들이 앉아있었는데 그래봤자 12명. 생각보다 조금 일찍 수업이 끝났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날인데 맛있는거 한 번 쏘세요!", "아, 목말라~" 등등 먹이찾는 둥지 속 제비새끼들마냥 우르르 몰려서 난리가 났었다. 음료수와 오예스 하나씩을 먹으면서 "비 오는 날" 빠질 수 없는 무서운 얘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무서운 얘기들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 뿐인지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오늘 모인 학생들은 재미있게 들었다. "오~ 찝찝해~"라는 반응이 나올 때 야릇한 쾌감(?)도 느껴보고.. 후후..

3교시. 두둥~. 남학생 2명이 앉아있었다. 살짝 당황했지만 이미 예상했던 일. 녀석들 사이에 앉아서 수업을 했다. 과외하는 기분이더라. 왼쪽에 1명, 오른쪽에 1명 앉혀놓고 프린트물에 밑줄 그어가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인원이 적다보니 더 빨리 끝났다. 녀석들이 빙고 한 판 하잖다. 꿀밤맞기로. 가로 세로 5칸짜리 한국영화이름으로 빙고를 했다. 나는 "빙고"라고 하면 무조건 줄 5개 먼저 완성하는 사람이 이기는 건데 녀석들은 "다 지우는 빙고"를 하자고 했다. 블랙홀 빙고라던가 뭐라던가..

과일이름, 연예인이름 등등으로 했지만 연거푸 3연패. 이 자식들 밥먹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날 빙고만 한 것 같았다. 덕분에 꿀밤을 한 10대쯤 맞았다. 2학기 때는 절대 아이들에게 꿀밤 때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지하게 아프더라. ㅜ_ㅜ

종례하고, 청소하고, 뒷정리하는데 6명이 남아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보충수업 때 열심히 나오던 아이들인데다가 마지막날까지 수업듣겠다고 나온 것도 착해서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책상을 정돈하고, "방학 잘보내세요~"라는 인사를 평소보다 3배쯤 높은 톤의 목소리로 선생님들께 외친 후 아이들과 함께 교문을 나섰다. 그새 2명이 늘어있었다. "넌 수업도 안들었으면서 왜 왔냐?"라고 했더니 "선생님 보러 온거에요!"라고 대답하는 녀석들. "야, 문학샘이 쏜댄다. 와라!"라는 문자를 받고 부랴부랴 먹으러 왔을테지만 모른척했다. 녀석들도 오늘은 빠졌지만 꽤 열심히 보충수업을 듣긴 했으니까. 어쨌든 이제 방학아닌가!

피자헛으로 갔다가 - 어쩌다보니 피자헛가는 걸로 결정이 나버렸다;; - 다행히(!) 사람이 많아서 옆에 있던 분식집으로 갔다. 이것저것 시켜놓고 녀석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왜 선생님 했어요? 돈도 많이 못벌고, 사회적 지위도 안좋은데.."라는 한 아이의 질문에 주저없이 대답했다. "사실 내가 돈 많이 벌고 싶었으면 선생 안했지. 대신 나한텐 너희들이 있잖아." 거짓말 안보태고 정확히 2초 후에 아이들이 토하는 시늉을 했다. 냐하~

여자 아이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랬는지 생각한 것보단 많이 안먹더라.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잘 하던 녀석들은 "방학 잘보내세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날리고 헤어졌다. 생전 고개숙이지 않던 녀석도 오늘은 꾸벅 인사를 했고.. (그 아이는 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복도 저~ 끝에서부터 "선새앵니임~ 안녕하세~요오~!!"라고 인사하는데 고개는 숙이지 않는다. 내 눈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

내가 왜 선생을 하는지, 왜 여자친구가 없는지, 왜 자동차가 없는지 저희들끼리 온갖 상상을 다 쏟아내던 녀석들을 보면서 나는 씨익 웃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나중에 예쁜 마누라랑 맛있는 저녁 먹고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산책하고, 서로 재밌게 읽은 소설책 얘기하면서 그렇게 살거야"라고 했더니 또 저희들끼리 "선생님은 남자가 꿈이 너무 소박하다"는둥, "그래도 소박하게 사는게 더 힘든거야"라는둥 온갖 평을 다 늘어놓는 녀석들...

이래저래 즐거운 방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