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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바야흐로 "봉숭아"의 계절입니다

해봤지만 결국 "구라" 판정났음;;



오늘 뉴스를 보다가 봉숭아물을 들이는 장면이 나오길래 바로 어무이께 외쳤습니다.
"오! 어무이! 우리도 봉숭아물 들여야죠!"

사실 약간 늦은 감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요맘때쯤 - 더위가 한풀 가시고 살랑살랑 초가을 바람이 슬쩍 불어올 때쯤 - 들이는 봉숭아물이야말로 제대로 운치있죠. 헤헤.

어릴 때 마당에 핀 봉숭아꽃이랑 잎을 따다가 어무이랑 함께 물들이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땐 참 하기 싫었는데 울엄마가 억지로 끌어 앉히고선 열 손가락을 꼭꼭 묶었더랬죠. 사실 어무이께선 절 딸로 키우시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유치원 땐 "단발머리"도 해봤거든요;;

아무튼 그 땐 참 싫었는데 언젠가부턴 제가 먼저 슬쩍 물을 들이곤 했습니다. 열 손가락 다하진 않고 새끼 손가락에만요... 친구들이 "남자애가 무슨!"이라고 눈을 흘겨도 꽤 재미있었죠.

저 만화에도 나왔지만, "봉숭아물이 첫 눈 올때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란 얘기는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제일 처음 그 얘기를 해준 건 저희 어무이가 아니었을까 상상해봅니다. 히힛. 아무튼 제 첫사랑이 직접 물들여준 봉숭아는 그해 첫 눈이 오는 날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비록 손톱 끝에 희미하게 남긴 했지만 어쨌든 남아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첫 눈 오던 날, 둘이서 참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끝났습니다.

누군가 지어낸 저 말은 거짓임에 틀림이 없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뻥인줄 알지만 믿고 싶은' 그런 마음일 겁니다. '첫' 사랑을 '첫' 눈오는 날까지 한결같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 될테니까요.

아무튼 전 특이하게도 군.대.에서조차! 봉숭아물을 들였습니다. 더 재미난 사실은 "소대장님 주도" 아래, "전 소대원들"이 물들였다는거죠;; 하기 싫다고 난리치는 고참 및 후임이 수두룩했습니다만 - "우리가 여자애들도 아니고 뭡니까!", "소대장님, 여긴 군대입니닷!", "소대장님, 참으시지 말입니다?!" 등등 - 결국 해내셨습니다. 당시 소대장님의 명목은 "장병 정서 순화"였습니다. 다음날, 손톱이 벌개진 우리들을 보시곤 중대장님도, 행보관님도 허털웃음을... -_-a
(생각해보니 소대장님이 억지로 매준 실을 내무실 나가자마자 빼버린 사람들도 꽤 있었습니다만 봉숭아물이 절대 만만한게 아니죠. 그새 물들어서 한 이틀은 지속되더군요. 낄낄낄. 사실은 제가 새끼 손가락에 몰래 물들였다가 소대장님한테 딱 걸려서 그만... 얘들아, 미안해! 내가 시작한거였어~ 씨익...)

무더위도 한 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오늘밤엔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는군요. 참으로 오랜만에 동네 놀이터에서 봉숭아 따다가 온 식구 옹기종이 모여서 물들여봐야겠습니다. 어무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부지는 새끼 발가락이나 새끼 손가락 즈음에, 내 동생과 전 손가락 몇 개 골라서 물들여 봐야겠네요.

온가족이 한손가락씩 싸매고 복숭아라도 몇 개 깎아 먹어야겠습니다.

조만간 후기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