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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조선 시대 한시에서 사랑을 외치다

郎執木雕鴈 낭군님은 나무 기러기 잡고
妾捧合乾雉 저는 말린 꿩을 받들었지요
雉鳴雁高飛 그 꿩이 울고 그 기러기가 높이 날 때까지
兩情猶未已 우리 두 사람 정(情)은 끝이 없기를.

- 이옥(李鈺), 이언집(俚諺集) 중 아조 1편


조선 후기(18~19c)에 성균관 유생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면서도 전통 한문체에서 벗어나는 - 보다 우리말에 가깝고, 개성있는 - 문체로 글을 썼다는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나야했던 이옥.

"천지만물을 관찰함에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며, 사람을 보는 데에는 정(情)보다 오묘한 것이 없고, 정을 보는 데는 남녀의 정을 보는 것보다 진실된 것이 없다"고 말했던 이옥은 이언집에서 당대 여성의 삶을 한시로 노래했다.

아조, 염조, 탕조, 비조로 구분되는 시들은 각각 15~17수가 실려있는데 이 시들을 읽노라면 "한시"라고 하면 떠오르던 기존의 고정관념들은 모두 사그라져 버린다.

나는 "조선 시대의 결혼"이라고 하면 의례껏 "중매"를 통해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여자가 집안끼리의 의논을 통해 치르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얼굴도 못 본 사이에 무슨 정분이 생기겠으며, 당시의 청춘남녀들에게 있어서 소위 '연애'라는건 '남녀칠세부동석'라는 부동의 관념 앞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허나, 아조(雅調)의 첫 번째 작품인 이 시를 보라.

이제 막 혼례를 치르고 있는 신부는 더없이 그윽한 정을 담뿍 담아내고 있다. 말린 꿩과 나무 기러기가 훨훨 날아갈 때까지 '우리 두 사람'의 정은 끝이 없기를 소망하고 있다. 나직이 이 시를 소리내어 읽노라면 수줍은 새색시의 발그레한 얼굴이 떠오르고, 씨이익 웃고 있을 신랑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그 은근한 사랑 속에서 신부는 끝없는 정을 기원한다.

나는 너무도 오랫동안 옛 사람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들임을 잊고 지낸 것 같다. 200여년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의 모습은 지금 이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는 것을 - 때로는 더 아름답게 살았음을 -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졸업 학점 이수라는 것과는 별개로;; 한동안은 옛 사람들의 정취에 고즈넉히 빠져들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