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 바오로에게
+ 찬미 예수님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이 우리 가족에게 풍성히 내리시어, 금년 한 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고, 각자 하고자 하는 일도 차질 없이 다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바오로,
흡연이 흠이긴 하지만 대학생에 걸맞지 않게 늘 검소한 생활을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바오로,
유독 너에게 혹독히 굴었던 지난 날의 나의 생활 방식을 돌이켜 본다.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너에게 많이 미안하고, 나아가 가슴도 몹시 아프다. 그 시절 우리 관계는 마치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나, 수 년 전 어느 밤에 너와 함께 대구 가던 날 꽉꽉 막혔던 고속도로처럼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으로 일관된 불편함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바오로,
네가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나의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는 그것을 너의 고의적인 반항으로 간주했고, 또 일부는 사실이기도 했었다. 설상가상으로 네가 반항적이 되어갈수록 나는 거기 상응하는 더 무거운 체벌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식은 소유물은 아니지만, 부모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도리이며, 나의 가치관이기도 했고, 사회규범이라 치부했다.
바오로,
드디어 어느 날, 나는 네 방에 감시용 비디오 카메라 설치를 제안하게 되었다. 아니 일방적 통보였지. 순간, 너는 고사하고 너의 엄마의 황당해 하는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자식 놈 하나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여자가 내가 해보겠다 나서니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초를 치는 것 같아 몹시 불쾌했었다.
바오로,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너에게 심하게 굴었던 것은 네 말처럼 나의 못 다한 꿈을 너를 통해 대신 이루려 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던 것 같다. 또 당시 나의 삶의 가치관의 최대 덕목 중 하나는 공부 잘 하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보기에 너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내가 일러 준 방식대로 세상을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게 잘 사는 것이란 확신도 있었다. 더하여, 너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 모두 집안의 가장인 나를 존경하고 또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마땅함에도, 그렇지 않은데 대한 나의 강한 욕구 불만의 표출이었던 것 같다. 소위 사랑받고 싶은 욕구, 자율성의 욕구, 소속감의 욕구 등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데 대한 보복이었다고나 하여두자.
바오로,
양지 성당에서부터 함께 했던 행군과 캠프파이어. 그 밤에 우리의 냉랭했던 부자지간에도 한 줄기 따스함을 잠시 맛보았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그 후의 ME 체험과 보다 깊고 넓은 신앙생활 등을 통해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게 되었고, 또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른 모습들은 삶의 다양성이며, 나아가 더 풍요로운 가족생활을 위한 주님의 배려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너를 너로 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 지난 날의 나의 아집과 교만으로 가득 찼던 생각과 행동과 말들이 너에게 큰 상처를 주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하여 이제나마 나의 잘못에 대해 이렇게 충심으로 용서를 청한다. 너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어린 용서를 바란다. 다시 말한다. "미안하다 바오로!!"
2005. 11.7.
아빠
+ 찬미 예수님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이 우리 가족에게 풍성히 내리시어, 금년 한 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고, 각자 하고자 하는 일도 차질 없이 다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바오로,
흡연이 흠이긴 하지만 대학생에 걸맞지 않게 늘 검소한 생활을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바오로,
유독 너에게 혹독히 굴었던 지난 날의 나의 생활 방식을 돌이켜 본다.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너에게 많이 미안하고, 나아가 가슴도 몹시 아프다. 그 시절 우리 관계는 마치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나, 수 년 전 어느 밤에 너와 함께 대구 가던 날 꽉꽉 막혔던 고속도로처럼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으로 일관된 불편함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바오로,
네가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나의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는 그것을 너의 고의적인 반항으로 간주했고, 또 일부는 사실이기도 했었다. 설상가상으로 네가 반항적이 되어갈수록 나는 거기 상응하는 더 무거운 체벌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식은 소유물은 아니지만, 부모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도리이며, 나의 가치관이기도 했고, 사회규범이라 치부했다.
바오로,
드디어 어느 날, 나는 네 방에 감시용 비디오 카메라 설치를 제안하게 되었다. 아니 일방적 통보였지. 순간, 너는 고사하고 너의 엄마의 황당해 하는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자식 놈 하나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여자가 내가 해보겠다 나서니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초를 치는 것 같아 몹시 불쾌했었다.
바오로,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너에게 심하게 굴었던 것은 네 말처럼 나의 못 다한 꿈을 너를 통해 대신 이루려 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던 것 같다. 또 당시 나의 삶의 가치관의 최대 덕목 중 하나는 공부 잘 하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보기에 너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내가 일러 준 방식대로 세상을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게 잘 사는 것이란 확신도 있었다. 더하여, 너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 모두 집안의 가장인 나를 존경하고 또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마땅함에도, 그렇지 않은데 대한 나의 강한 욕구 불만의 표출이었던 것 같다. 소위 사랑받고 싶은 욕구, 자율성의 욕구, 소속감의 욕구 등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데 대한 보복이었다고나 하여두자.
바오로,
양지 성당에서부터 함께 했던 행군과 캠프파이어. 그 밤에 우리의 냉랭했던 부자지간에도 한 줄기 따스함을 잠시 맛보았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그 후의 ME 체험과 보다 깊고 넓은 신앙생활 등을 통해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게 되었고, 또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른 모습들은 삶의 다양성이며, 나아가 더 풍요로운 가족생활을 위한 주님의 배려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너를 너로 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 지난 날의 나의 아집과 교만으로 가득 찼던 생각과 행동과 말들이 너에게 큰 상처를 주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하여 이제나마 나의 잘못에 대해 이렇게 충심으로 용서를 청한다. 너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어린 용서를 바란다. 다시 말한다. "미안하다 바오로!!"
2005. 11.7.
아빠
아버지.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