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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우울한 일요일 저녁

1. 훈장 똥은 개도 안먹는다?!
옛날엔 "선생질"이라고 했단다. 선생질을 하다보면 속이 새까맣게 타서 선생의 똥은 개도 안먹는다고 했단다. 훨씬 예전의 "훈장질"은 먹고 살 길이 없던 몰락 양반의 최후의 생계 수단 쯤으로 여겨지기도 했단다.
누군가 말한다. "옛날이야 남자 직업이 선생이면 무시하고 그랬지, 요즘엔 부부교사가 최고잖아." 그녀의 말이 "너도 여교사 만나서 결혼하면 좋을거야"라는 뜻으로 들리기보다 "그래, 요즘엔 선생질도 좋아졌잖아"라는 말로 들렸다면 내가 너무 삐뚤어진 것일까. 비사범대생인 주제에, 교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는 내가, 그에게 '교사의 사명' 따위를 운운해봤자 또 다른 말만 난무할 것 같아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스승님', '군사부일체' 따위의 말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이미 그의 뇌리에 나는 "철밥통을 노린", "선생질" 따위에 종사할만한 그릇의 남자로 각인되었을 테니까.
하긴. 그가 선망해 마지 않는 "삼성"을 나는 기회있을 때마다 씹어댔으니 뭐 하나 고운 구석이 보였겠냐마는, 그의 날 선 세치 혀가 야속한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 전화라서 다행이었다.

2. 쪽팔리게 다른 나라 대통령들 앞에서 시위하고 그러냐?!
예전에 말했듯이, 내 또래의 사람에게서 위와 같은 얘기를 듣는다는게 서글플 때가 있다. 그에게 불과 지난 한 달 사이에 몇 명의 농부가 자살을 했는지, 왜 그들이 극악의 선택을 했는지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내가 APEC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이유조차 자기 식대로 해석한다. 여차저차 하는 동안, APEC은 마무리가 된 모양이고, 부시는 우리 나라 어느 부대에서 자전거를 탄 모양이다. 난 그저 조용히 해당 부대 사병들의 "미싱질"이 얼마나 눈물겨웠을지를 상상해 보는 수 밖에.

3. 금연
"큰 아들! 나와서 이거 봐라!"
어무이는 TV에서 폐암이나 후두암, 기타 흡연으로 인해 발병률이 급격히 높아지는 병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언제나 나를 급하게 호출하신다. 그래, 끊긴 끊어야겠지.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닌데 "네, 곧 끊을거에요"라고 얼버무리고 들어와서 또 한 대를 피워물었다. 차마 "여자친구 생기면 끊을거에요. 뽀뽀해야되니까"라고 말씀은 못드렸다. 끊긴 끊어야 겠지만 아직은 끊고 싶은 생각이 그닥 들지 않는다. 지난 번의 경험에 미루어 보아, 나는 금연하려고 마음 다잡아 먹으면 끊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은 끊고 싶지 않다. "한숨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흡연의 매력을 나는 버리고 싶지 않다.


여자인 친구
와 꽤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그 애와 통화를 할 때면 가끔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의 차이에 대해서도 곰곰이 곱씹어 보기도 하고.

어쩌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 아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나는 평생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차라리 사귀지 않는 것이 쾌적한 삶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그녀는 나와 다르고, 그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에 친구라고 부르고 있긴 하지만 따지고보면 그녀와 내가 친구가 된 것은 내 가장 친한 친구가 그녀의 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오늘 통화를 하다 문득,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 물론 내색은 하지 않고 - 혼자 상상을 했다. 과연 내 친구의 애인이 아니었다면 이 애와 내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하고. 그 애와는 이제 될 수 있는 한 긴 통화는 자제해야할 듯 싶다.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용건만 간단히 통화하고 이런저런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삼가해야지. 이러다 친구 녀석하고도 틀어질까봐 무섭다. 이번에 그 녀석 휴가나오면 이 얘기도 한 번 할 참이다.


해가 갈수록 사람들을 대하는게 힘들어진다. 영문도 모른 채 나를 '쌩까는'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아직 모르겠고, 나와 너무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만 하는 상황에서 어떤 표정과 말투를 지녀야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점점 더 고등학교 때 친구 녀석들이 한없이 보고싶어질 뿐이다.

어쨌거나 일요일 저녁을 가장 우울하게 만든 건 내가 보낸 문자에 대꾸해주지 않는 그녀라는 사실이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