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험을 끝낸 녀석이 현관문을 열고 등장하던 그 순간, 온 식구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고생했다!!"
나는 끝내 "시험 잘 봤냐?"라고 묻지 않았다. 점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내가 익히 경험해봤으니까. 당시 나는 시험전의 격려전화도 부담스러웠지만 시험 직후 걸려오는 "잘 봤냐? 어땠냐?"는 전화가 더욱 짜증스러웠다. 물론 모든 전화는 어무이께서 처리하시도록 부탁드렸지만...
아무튼 간만에 외식하고 녀석은 친구들이랑 약속있다고 휙 떠났고 남은 세 식구만 집으로 왔다. 내 시험과도 관련이 있고 문제가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해설방송을 봤다. 언어영역 듣기 문제 해설이 끝날 무렵, 어무이가 동생의 수험표를 가져오셨다.
어무이와 나는 마치 비밀회의라도 하는양 그 수험표를 들고 하나씩 채점해나갔다. 이건 원래 수험생 본인이 해야하는 일 아닌가?! 내 동생은 "시험 어땠냐?"는 질문에 "언어는 쉬웠고, 사탐은 어려웠고, 영어는 보통이었다."고 대답한 것 말고는 일.체. 점수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야, 내일 학교에 예상점수 내야되지 않냐?"라는 질문에 "대충 380 나올거 같은데 몰라. 나중에 하지 뭐"라고 하더라. 너무나 자연스럽고 태평한 표정에 나 역시 '그래, 점수야 성적표 나오면 알게 될텐데뭘'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어무이와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 사실 나는 정말 말그대로 '이 녀석이 몇 점이나 받았을까'라는 게 궁금했다. 사실 녀석은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나는 내신 성적에 비추어보아 수능 역시 뒤에서 세는게 빠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몇 점이면 어디, 몇 점이면 어디, 이런건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어무이는 조금 달랐다. 녀석이 신학교를 갈 수 있을 정도의 점수는 받았는지 짐짓 심각하게 물어보셨기 때문이다. - 끝까지 채점을 했다.
오호, 언어는 거의 만점을 받았더라. 동생이 시험을 잘봤구나..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우와, 도대체 문제가 얼마나 쉬웠으면 얘가 이 점수를 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무이껜 말씀드리지 않았다;
수학, 반타작. 내가 고3이었을 때, 수학 반타작이면 성공적인 점수였다. (이게 수능 때 운이 좋아서 대박나긴 했지만;;) 평소 실력을 알고 있었으니 여기까지 채점하고 울어무이, 기뻐하고 계셨다. "얘가 그래도 완전 바닥은 아니었구나."
그런데 사탐도 반타작. 슬슬 걱정하시는 어무이. "얘 이래가지고 신학교 갈 수 있겠냐?" "글쎄요, 아직 영어 남았으니까 일단 끝까지 채점부터 해보죠."
영어, OTL... 어쩔끄나, 어쩔끄나, 이 내 동생 어쩔끄나.
가톨릭 사제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다른 진로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놓은게 없는 내 동생은 신학교에 입학하지 못할 경우,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부모님과도 마찰이 좀 있었고. (집에서 신학교 입학을 강요하는 건 아니었는데 "입학하지 못할 경우"의 차선책을 동생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생의 점수는 참담했다. 서울에 있는 학교는 일단 물건너간 점수 같다. 그치만 뭐 언제나 그렇듯이 녀석을 제외한 다른 식구들만 점수에 연연해할 뿐 본인은 언제나 초월적인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 어쩌면 녀석이 인생에서 중요한게 학업성적만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머리로,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것인지도...
채점을 끝내고 다시 수험표를 동생의 가방 속에 넣고 오신 어무이께 우리가 채점해본 건 동생한테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 사실 너무 궁금해서 해보긴 했는데 우리가 그런걸 알면 삐질 게 분명하다.
동생아. 미안하다. 네 점수, 우리가 다 알아버렸다. 밥먹을 때 네가 "한000점은 맞은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 사실 믿진 않았지만 가채점 결과는 너무도 치명적이구나. 부디 너도 그 점수를 예상했지만 식구들이 걱정할까봐 뻥친 것이기를 빈다.
자,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 동생은 판 자체에 흥미가 없다. 아니 이미 승부에 대해선 초월한지 오래다. 나와 비교해보면 녀석은 강철 무지개 위에 꽂꽂하게 선 채, 흰 눈을 이마로 받으며 저 멀리 낙락장송을 바라보며 꾀꼬리 소리에 취한 채 흐르는 구름을 발 아래 둔, 도인의 풍모를 지닌 것 같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라 할지라도 녀석이 자신의 풍모를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욕심을 좀 내자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루빨리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녀석이 이미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 오늘 언어영역만 풀어봤는데 확실히 문제가 쉽더라. 예전보다 소위 "아리까리한" 문제가 거의 없었다. 동생이 수능을 봤는데 내가 수능봤을 때보다 더 긴장되고, 뉴스에 귀기울이게 된다. 허허, 이 것 참...
+ 며칠전 실업계 고3 학생이 실습 중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신문과 TV 뉴스에서 '수능시험을 보지 않은' 19살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몇 번이나 언급이 되었을까. 청소년이 곧 학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걸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끝내 "시험 잘 봤냐?"라고 묻지 않았다. 점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내가 익히 경험해봤으니까. 당시 나는 시험전의 격려전화도 부담스러웠지만 시험 직후 걸려오는 "잘 봤냐? 어땠냐?"는 전화가 더욱 짜증스러웠다. 물론 모든 전화는 어무이께서 처리하시도록 부탁드렸지만...
아무튼 간만에 외식하고 녀석은 친구들이랑 약속있다고 휙 떠났고 남은 세 식구만 집으로 왔다. 내 시험과도 관련이 있고 문제가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해설방송을 봤다. 언어영역 듣기 문제 해설이 끝날 무렵, 어무이가 동생의 수험표를 가져오셨다.
어무이와 나는 마치 비밀회의라도 하는양 그 수험표를 들고 하나씩 채점해나갔다. 이건 원래 수험생 본인이 해야하는 일 아닌가?! 내 동생은 "시험 어땠냐?"는 질문에 "언어는 쉬웠고, 사탐은 어려웠고, 영어는 보통이었다."고 대답한 것 말고는 일.체. 점수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야, 내일 학교에 예상점수 내야되지 않냐?"라는 질문에 "대충 380 나올거 같은데 몰라. 나중에 하지 뭐"라고 하더라. 너무나 자연스럽고 태평한 표정에 나 역시 '그래, 점수야 성적표 나오면 알게 될텐데뭘'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어무이와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 사실 나는 정말 말그대로 '이 녀석이 몇 점이나 받았을까'라는 게 궁금했다. 사실 녀석은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나는 내신 성적에 비추어보아 수능 역시 뒤에서 세는게 빠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몇 점이면 어디, 몇 점이면 어디, 이런건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어무이는 조금 달랐다. 녀석이 신학교를 갈 수 있을 정도의 점수는 받았는지 짐짓 심각하게 물어보셨기 때문이다. - 끝까지 채점을 했다.
오호, 언어는 거의 만점을 받았더라. 동생이 시험을 잘봤구나..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우와, 도대체 문제가 얼마나 쉬웠으면 얘가 이 점수를 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무이껜 말씀드리지 않았다;
수학, 반타작. 내가 고3이었을 때, 수학 반타작이면 성공적인 점수였다. (이게 수능 때 운이 좋아서 대박나긴 했지만;;) 평소 실력을 알고 있었으니 여기까지 채점하고 울어무이, 기뻐하고 계셨다. "얘가 그래도 완전 바닥은 아니었구나."
그런데 사탐도 반타작. 슬슬 걱정하시는 어무이. "얘 이래가지고 신학교 갈 수 있겠냐?" "글쎄요, 아직 영어 남았으니까 일단 끝까지 채점부터 해보죠."
영어, OTL... 어쩔끄나, 어쩔끄나, 이 내 동생 어쩔끄나.
가톨릭 사제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다른 진로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놓은게 없는 내 동생은 신학교에 입학하지 못할 경우,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부모님과도 마찰이 좀 있었고. (집에서 신학교 입학을 강요하는 건 아니었는데 "입학하지 못할 경우"의 차선책을 동생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생의 점수는 참담했다. 서울에 있는 학교는 일단 물건너간 점수 같다. 그치만 뭐 언제나 그렇듯이 녀석을 제외한 다른 식구들만 점수에 연연해할 뿐 본인은 언제나 초월적인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 어쩌면 녀석이 인생에서 중요한게 학업성적만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머리로,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것인지도...
채점을 끝내고 다시 수험표를 동생의 가방 속에 넣고 오신 어무이께 우리가 채점해본 건 동생한테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 사실 너무 궁금해서 해보긴 했는데 우리가 그런걸 알면 삐질 게 분명하다.
동생아. 미안하다. 네 점수, 우리가 다 알아버렸다. 밥먹을 때 네가 "한000점은 맞은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 사실 믿진 않았지만 가채점 결과는 너무도 치명적이구나. 부디 너도 그 점수를 예상했지만 식구들이 걱정할까봐 뻥친 것이기를 빈다.
자,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 동생은 판 자체에 흥미가 없다. 아니 이미 승부에 대해선 초월한지 오래다. 나와 비교해보면 녀석은 강철 무지개 위에 꽂꽂하게 선 채, 흰 눈을 이마로 받으며 저 멀리 낙락장송을 바라보며 꾀꼬리 소리에 취한 채 흐르는 구름을 발 아래 둔, 도인의 풍모를 지닌 것 같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라 할지라도 녀석이 자신의 풍모를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욕심을 좀 내자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루빨리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녀석이 이미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 오늘 언어영역만 풀어봤는데 확실히 문제가 쉽더라. 예전보다 소위 "아리까리한" 문제가 거의 없었다. 동생이 수능을 봤는데 내가 수능봤을 때보다 더 긴장되고, 뉴스에 귀기울이게 된다. 허허, 이 것 참...
+ 며칠전 실업계 고3 학생이 실습 중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신문과 TV 뉴스에서 '수능시험을 보지 않은' 19살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몇 번이나 언급이 되었을까. 청소년이 곧 학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걸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