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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 템즈 강변에서 술취한 올빼미.
런던 시내를 둘러보던 날 저녁, 친구와 함께 기네스 흑맥주를 마셨다. 우리나라의 500cc 맥주잔보다 조금 작은 잔으로 2잔만 마셨을 뿐인데 특유의 진한 커피향에 매료되어 급히 마신 탓인지 금방 취기가 올랐다.
살짝 확대된 동공에 억지로 힘을 주며 타워브리지를 건너서 사진을 몇 방 찍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웬 아저씨(할아버지에 가까운) 한 분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몇 명의 구경꾼 앞에서 기타 반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술김에 냅다 그 분한테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기타를 받아들었다.
"할아버지, 저 한국에서 왔는데요, 그 기타 한번만 쳐보면 안되요?"
"음.. 남한에서 왔냐? 마이크는 내가 쓰는거라서 위생상 못빌려준다."
"아, 마이크는 없어도 돼요. 그냥 기타만 잠깐 쳐볼께요."
"음.. 무슨 노래 칠건데?"
"한국 노래요."
물론 한국어로 대화가 진행되진 않았다. 저 대화는 순전히 '나의 발화 목적'만이 충실히 재현된 대화이다. 어쨌거나 살짝 충돌이 있었지만 - 나 같아도 말도 잘 안통하는 술취한 낯선 외국인에게 선뜻 기타를 내주긴 힘들지;; - 결국 할아버지는 흔쾌히 빌려주었다.
내가 기타를 둘러메고 뚱땅거리는 동안 주인 아저씨는 물론 앞에 있던 몇 명의 구경꾼조차 지들끼리 떠들뿐 아무도 귀기울여듣지 않았다. (얼핏 들은 바로는 나를 보며 비웃었던 거 같은데 난 아랑곳없이 그냥 쳤다. 좀 웃으면 어때.) 친구 녀석은 "쪽팔리다"며 저~쪽에 숨어있었는데 용케 사진 한 장은 찍어두었다. 어쨌든 친구 녀석조차 도대체 무슨 노래를 친거냐고 나한테 물어볼 정도였지만
나는 그 밤의 기타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아.. 맞다!
그 때, 내 연주(!)가 끝났을 때, 주인 아저씨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외국인이 엄지손가락 올리면서 박수쳐줬다. 푸핫!
주인 아저씨에게 감사의 표시로 크리스마스씰 한 장과 오렌지 한 알을 드리고 왔다. 흐흐.. (그런데 여행 도중에 참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아저씨한테 준 크리스마스씰이 아까워서 혼났다;;; 그 아저씨는 은근히 나 미워했는데. 쳇.)
+ 그냥... 크리스마스씰에 대한 글을 보다 문득 생각이 났다. 시험이 코 앞에 닥치니 문득 작년 여름의 여행 생각이 참 많이 난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멀리 산행이라도 한 번 다녀와야겠다. 1년동안 너무 답답하게만 살아온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