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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머리 자르다

오늘 저녁에 머리를 잘랐다. 정확한 표현은 "머리카락을 잘랐다" 혹은 "머리 모양새를 다듬었다"라고 해야겠지. 대구가 고향인 우리 어무이는 간혹 "머리 끊었다"라고 하시기도 하더라.

지난 번에 미용실에 갔다가 "대충 알아서 다듬어 주세요"라는 말의 위험성을 충분히 실감했기 때문에 오늘은 작정을 하고 갔다. oldboy님의 조언을 따라 일단 여자 미용사를 찾았다. - 사실 찾은게 아니라 남자 미용사는 한 명이었고 다른 사람의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 "어떻게 잘라드릴까요?"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이렇게, 특히 지난 번에 상처받은 뒷머리는 이러저러하게, 그리고 월요일에는 면접이 있으니 특별히 깔끔하게 보여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오늘 내 머리를 잘라준 그 "언니"는 친절한 편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말은 많이 해주는데 툭툭 던지는 느낌. 하지만 나는 미용실에서 "어머~ 손님~~"하며 달짝지근하게 말을 건네는 이들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그 언니의 그런 태도가 썩 마음에 들었다. 이름도 외워두었다.

치렁치렁한 단발머리에, 빨갛게 염색도 해보고, 집에서 면도기로 박박 밀어가며 스킨헤드를 만들어본 적도 있는 나는 머리모양에 대한 아쉬움이나 집착, 도전정신 같은건 이제 사라졌다. 다만 아직도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 어떤건지 잘 모르겠다는게 가장 큰 문제. 예전에 사귄 여자친구들은 하나같이 "오빠는 어떤 머리를 해도 어울려", "넌 얼굴이 되니까" 등등의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았다. (믿으면 복이 와요)

미용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머리를 다듬고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내가 볼 땐 분명히 똑같은 크기의 도구로 파마를 한 것 같은데 풀고 나니 영판 다른 모양새가 나오더라. 남자든 여자든 머리를 만지고 나면 전체적인 분위기마저 바뀌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게 항상 긍정적인 결과는 아니라는 데에서 슬쩍 웃음이 나올 때도 있고... ;-p

"얼굴은 길고 두상은 옆짱구이며, 윗머리는 살짝 곱슬머리인데 옆머리는 직모인데다가 뒷쪽엔 제비초리도 있고 양쪽이 파여 올라가서 상당히 정리하기 애매한 머리"(그 분의 말씀)를 가진 나는 오늘도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 채 미용실을 나섰다. 윗머리가 조금 더 길게 되면 훨씬 나아질거라는 그 분의 말을 가슴에 아로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