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생의 재수학원 등록을 위해 함께 몇 군데의 학원을 둘러보았다. 부모님이 이제 연세가 좀 있으신대다 어무이는 오래 걸어다니시면 금방 피곤해하시므로 내가 가기로 했다. 사실 녀석과 함께 바람도 좀 쐴겸 내가 먼저 나가자고 했다.
몇 군데를 돌아다녀본 후, 녀석과 내가 동시에 점찍은 곳에 등록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동생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 몇 가지를 들었다. 하긴 나랑 7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라서 예전부터 "나의 정신세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유머에도 익숙해져 있지만 오늘 얘긴 충분히 공감하면서 신나게 웃었다.
아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지난 번의 내 착각에 대해서. 동생 역시 똑같은 일을 경험했다고 한다. 저만치에서 예쁜 여학생 둘이 오고 있었단다. (얘네들은 꼬옥 둘이 다닌다.) 내심 "폰번호 받아가려고 하는구나"라며 기뻐하던 내 동생(피는 못속인다;;)이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그들의 부름에 응답하려는 찰나,
"디쁠 한 갑만 사다주시면 안돼요?"
당황한 내 동생(내 동생도 고딩이었다. 사실 이 놈이 좀 삭아보이긴 한다지만)이 "네?"라며 살짝 놀라고 있는 사이, 그 중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는 바로 내 동생의 "친구의 여동생"!
그 이후의 일은 뭐 상상에 맡긴다.(라고 내 동생이 말했다.) 이 얘기를 듣고서 정말 요즘 애들 어처구니없다고, 담배도 "후까시"잡으려고 피우는 거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있는데 동생이 한 마디를 더 보탠다. "형, 더 웃긴 거 있어."
내 동생은 별명이 "종합무술인"이다. 사실 내가 볼 땐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고 이것저것 깝죽대기만 했는데 이 놈이 학교에서 어지간히 뻥을 쳤나보다. 검도 약 10개월, 권투 약 1년, 어릴 때 태권도 잠깐, 지 혼자 이소룡 비디오 보면서 절권도 연습(지말로는 절권도라는데 내가 볼땐 쌍절곤가지고 장난치는거다;;) 등등을 모두 합해서 애들한테 마치 잘 하는 것처럼 말한 듯 하다.
어쨌든 녀석이 키도 크고 몸무게도 0.1톤에 육박하다보니 일단 덩치 하나만으로도 먹고 들어가긴 한다. 아무튼 이런 내 동생인데 "껌 좀 씹고, 침 좀 뱉는", 별 것 아니면서 후까시만 잔뜩 든 조무래기 껄렁패들한테 붙잡힌 적이 있단다. (사실 여기까지 들었을 땐 이만한 덩치를 삥뜯을 생각을 하는 놈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내 동생도 학원폭력의 피해자인가 싶어서 순간 당황했었다.)
교복을 입고 조금 으슥한 골목길을 가는데 담배불이 반~짝(동생 표현 그대로임)하더니 자기를 부르더란다. 여기부터는 설명이 필요없다. 일단 당시 대화를 들어보자.
껄렁이: 야! 너 좀 이리 와봐!
내동생: 왜?! (내 동생, 겁이 없다. 지가 권투를 되게 잘하는 줄 안다.)
껄렁이: 아쭈?! 이게 반말이냐? 찌익~ (바로 그 "이빨 사이로 침 뱉기")
내동생: 왜?! 뭐?!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내 동생, 녀석들이 교복을 입고있길래 명찰부터 봤단다. 동생은 3학년, 녀석들은 1학년. 게임오바.
내동생: 이 새끼들이 미쳤나, 죽을래?!
껄렁이: 뭐?! (라고 말하는 순간 동생과 눈이 마주침)
아까 침 뱉었던 그 놈, 바로 무릎꿇고 내 동생 바지가랑이를 잡고 "형, 잘못했어요"라고 빌더란다. 알고보니 학교 후배일뿐만 아니라 내 동생 "친구의 동생"이었던 것. 이 다음 동생이 날린 멘트가 또 일품이었다.
내동생: 야, 너 XX이 동생아냐! 너 여기서 지금 뭐해?! (아까 중딩때 대사와 동일)
너 이러는거 XX도 알고있냐? 내가 몇 명째야? (몇 명째인지 왜 물어.. ㅡㅡ)
껄렁이: 열 명째요.. (그걸 또 순순히 말한다)
내동생: 어우, 씨! 야, 이런 짓 하지 말고, 성당이나 나와 임마. 나, 신부님될거야.
껄렁이: 예에?! O.o 혀,형이 신부님한다구요?
장하다, 내 동생! 뭐 바지가랑이는 좀 부풀려 말한 것 같아서 물어봤다니 진짜란다. 그 녀석과 같은 체육관다닌 적이 있는데 그 때 "스파링"을 했었단다. 그 때 그 껄렁한 놈이 동생의 무서움을 알았다나 어쨌다나.. 내가 볼 땐 순 물주먹에 보이는건 약점 밖에 없는데..낄낄낄..
그렇게 한바탕 웃어제끼며 얘기를 주고받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더라. 천방지축 날뛰던 내 동생이 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제가 되려고 준비를 한다. 오늘 녀석과 한나절을 같이 보내면서 슬금슬금 느낌이 오더라. 녀석은 올 한 해를 멋지게 보낼 준비가 된 것 같다.
+ 내가 교사가 되고나면 동생한테 많은 자문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면 나 같은 형을 둔 동생도 복받은거지만 이런 동생이 있는 나도 참 복받은거다. 우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