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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평생을 닭으로 살다간 독수리

한 인디언 용사가 독수리 알을 주웠지만 그 둥지를 찾을 수가 없어서 대신에 프레리 닭의 둥지 속에 알을 넣어주었다. 마침내 독수리 알은 프레리 닭의 둥지에서 부화되었다. 겨우 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어린 독수리는 그 날카로운 눈으로 세상을 처음 보았다. 다른 프레리 닭의 행동을 따라 어린 독수리도 땅바닥을 쪼고, 곡식 낱알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고, 또 땅에서 불과 얼마 되지 않는 높이로 날기 위해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생활했다. 어린 독수리는 땅에서 사는 프레리 닭의 일상생활을 모방하면서 자신의 삶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리의 큰 독수리가 프레리 닭의 둥지 위를 날아갔다. 제법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을 프레리 닭으로 여기고 있던 어린 독수리는 창공을 날아가는 그 멋진 새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저 새는 누구야?" 놀라는 목소리로 묻자, 한 늙은 프레리 닭이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전에 언젠가 한 번 본 적이 있어. 저 새는 모든 새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고 강하고 멋진 독수리라는 새야. 그러나 넌 어림도 없어. 넌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 마리의 프레리 닭일 뿐이야." 그리하여 이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힌 그 독수리는 평생을 스스로 프레리 닭이라고 여기며 살다가 죽어갔다.

*프레리 닭: 미국 동부와 서부지역의 평원지대에서 발견되는 닭의 한 종류


<도입>
물음: 독수리가 닭으로 살게 된 원인을 5가지 이상 써봅시다
- 길잡이
- 주어진 환경 / 자아성찰 / 타인의 무책임한 언행 / 도전 의식 / 문제의식없는 모방


<전개>
1. 문학은 편견이나 무지를 넘어 더 넓은 안목으로 세계를 보고 스스로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2. 나와 내 세계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사는 이 곳은 어떤 세상인지에 대한 고민) 타자를 향해 개방되고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

3. 문학은 현실을 그대로 모사하지는 않지만 (프레리 닭의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단순한 사실 묘사와의 간극을 통해 낱낱의 사실을 넘어서는 형상적 인식을 가능케 한다. 이는 논리적 사유와 개념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삶의 부피를 온전하게 살리면서 추상화되지 않은 진실의 인식에로 나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4. 문학을 읽고 논하는 일은 그 자체가 과거와 오늘의 삶에 대한 적극적 인식을 추구하는 한 방식이자, 이 세계에 대해 실천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로서의 몫을 가진다.


<정리>
1.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거나 더 넓은 안목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학은 우리 자신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2. 문학은 특정인들만이 향유하는 것도 아니며, 언제나 학문적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곧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삶이 곧 문학이다.

(참고: 김흥규, "한국 문학의 이해",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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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업시간을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고민하다 내가 고등학생 때 읽었던 글이 하나 생각났다. 나름대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글이었는데 문학 수업의 첫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 교과서와 지도서를 받아왔다. 이틀 남았다. 굉장히 걱정도 되고, 심하게 설레이기도 한다. (^^;;) 몇 가지 다른 계획안도 생각해 봐야겠다. 일단 첫 수업을 하고 나면 조금 익숙해질테니... (사실 교생실습 때도 첫 수업 시간이 가장 힘들었고 이후로는 차츰 익숙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