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글: 강남에 살면 이런 비아냥을 들어야 한다.
일단 관련글을 읽고 오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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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직 교사는 아니지만, 현재 강남의 사립고등학교에 교육실습생으로 나가고 있으며, 시커먼 남학생들만 드글드글한 곳이지만 모교로 실습을 나가니 새로운 즐거움도 쏠쏠히 느끼는 중이다.
나는 그 편지글이 전혀 유치하거나 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글을 읽을 학생들이 깔깔대며 웃고 있을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20년 넘게 강남에서 살고 있고, 학교도 이 곳에서 모두 다녔으며, 교육실습도 모교로 왔다. 강남이 어떤 곳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는지도 잘 알고 있다.
도혀니다님께 먼저 드리고 싶은 말은 현재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위치가 어떤지, 그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를 직접 체험해보시길 바란다는 점이다.
여고생들은 그 편지를 읽고 [자격지심에 빠지게 들어 패배주의와 죄의식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편지에 대한 느낌을 동생분과 직접 이야기해보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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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가 실습을 나가고 있는 학교는 모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이유는 학생들의 생활태도나 사고방식이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때와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학생들은 겁이 없다. 선생님이 "혼난다"라고 하는 말은 그저 말로 들린다. 그들은 무서운 것도 없고, 따라서 주눅들지도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거리낌없이 할 줄 알고,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표시한다. 이들이 요즘 가장 무서워하는 말은 "때리겠다"라든가 "혼난다"라는 말이 아니라 "점수에 반영하겠다"라는 말이다.
그 편지에서 "*점수"부분에 많이 동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내신의 비율이 높다. 성적은 곧 대학입시와 연관되며, 1, 2점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런 학생들이 대학 새내기가 되어, 대학생의 첫 여름방학을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를 하는 것으로 보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학과 학회의 경우, 새내기들이 "토익 공부"로 인해 학회 행사에 불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선생님의 편지가 한 쪽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감한다. 그러나 그 편지를 읽을 학생들은 그 동안 그러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냈을 이들이 대부분이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도록 하는 것, 수업시간에 그토록 강조하는 '관용']을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이 세상에는 "다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최종 판단은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두되,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교사로써 충분히 제공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점수를 위한 곳도 아니고, 입시를 위한 곳도 아니다. 학교는 잘 사는 사람만 다니는 곳도 아니며, 못 사는 사람이 다니지 못하는 곳도 아니다. 학교에서조차 학생들이 서로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훗날 올바른 관계를 형성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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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선생님의 편지에 보이는 모든 표현들이 조금도 유치해보이지 않는다. "오, 나의 예쁜 귀염둥이들아. 나의 영원한 애인들아"라는 구절은 이제 겨우 일주일 정도를 학생들과 함께 보낸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생님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일단 관련글을 읽고 오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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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직 교사는 아니지만, 현재 강남의 사립고등학교에 교육실습생으로 나가고 있으며, 시커먼 남학생들만 드글드글한 곳이지만 모교로 실습을 나가니 새로운 즐거움도 쏠쏠히 느끼는 중이다.
나는 그 편지글이 전혀 유치하거나 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글을 읽을 학생들이 깔깔대며 웃고 있을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20년 넘게 강남에서 살고 있고, 학교도 이 곳에서 모두 다녔으며, 교육실습도 모교로 왔다. 강남이 어떤 곳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는지도 잘 알고 있다.
도혀니다님께 먼저 드리고 싶은 말은 현재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위치가 어떤지, 그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를 직접 체험해보시길 바란다는 점이다.
여고생들은 그 편지를 읽고 [자격지심에 빠지게 들어 패배주의와 죄의식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편지에 대한 느낌을 동생분과 직접 이야기해보시기를 부탁드린다.
현재 내가 실습을 나가고 있는 학교는 모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이유는 학생들의 생활태도나 사고방식이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때와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학생들은 겁이 없다. 선생님이 "혼난다"라고 하는 말은 그저 말로 들린다. 그들은 무서운 것도 없고, 따라서 주눅들지도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거리낌없이 할 줄 알고,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표시한다. 이들이 요즘 가장 무서워하는 말은 "때리겠다"라든가 "혼난다"라는 말이 아니라 "점수에 반영하겠다"라는 말이다.
그 편지에서 "*점수"부분에 많이 동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내신의 비율이 높다. 성적은 곧 대학입시와 연관되며, 1, 2점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런 학생들이 대학 새내기가 되어, 대학생의 첫 여름방학을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를 하는 것으로 보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학과 학회의 경우, 새내기들이 "토익 공부"로 인해 학회 행사에 불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선생님의 편지가 한 쪽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감한다. 그러나 그 편지를 읽을 학생들은 그 동안 그러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냈을 이들이 대부분이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도록 하는 것, 수업시간에 그토록 강조하는 '관용']을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이 세상에는 "다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최종 판단은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두되,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교사로써 충분히 제공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점수를 위한 곳도 아니고, 입시를 위한 곳도 아니다. 학교는 잘 사는 사람만 다니는 곳도 아니며, 못 사는 사람이 다니지 못하는 곳도 아니다. 학교에서조차 학생들이 서로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훗날 올바른 관계를 형성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나는 저 선생님의 편지에 보이는 모든 표현들이 조금도 유치해보이지 않는다. "오, 나의 예쁜 귀염둥이들아. 나의 영원한 애인들아"라는 구절은 이제 겨우 일주일 정도를 학생들과 함께 보낸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생님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