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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며 부대끼며

고무밴드의 팬클럽에 가입했다

말년 병장 시절, "여름향기"에 나오던 손예진이 그렇게 예뻐보일 수가 없었다. PX에 가면 "손예진 스티커"가 들어있는 브라보콘만 사먹었고, 후임이든 고참이든 무조건 아이스크림은 브라보콘만 사먹으라고 압력을 넣고, 손예진 스티커는 내 관물대에 주루룩 붙여놓았었다.

후임들에게 주특기 훈련을 시켜놓고 하릴없이 빈둥거리면서 손예진에게 보낼 팬레터를 끄적거려보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팬레터를 써 본 순간이었지만 결국 다 쓰진 못했고, 보내지도 않았다.

휴가 때 손예진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도 듣고, 그보다는 당장 전역 후에 먹고살 길을 생각하는게 급선무였기 때문에 손예진은 그렇게 조용히 내 머리 속에서 지워져갔다. (손예진 본인도 머리 속에 지우개 들어있다고 영화를 찍지 않았던가;; )

이후로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던 내게 어느날 참 묘한 밴드 하나가 들이닥쳤다. 밴드이름이 "고무밴드"란다. 범상치 않은 멤버들의 사진을 보면서 "이 아저씨들, 희한하게 생겼네..."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저 우연히 그들의 웹사이트를 들여다보았고 음악 몇 곡을 듣게 되었다.

참 좋았다.

하이킹 - 고무밴드

여행스케치의 3집을 처음 들었을 때의 친근함과 조동익의 "동경"을 처음 들었을 때의 잔잔함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단숨에 모든 MP3를 다운받았다. (이 밴드는 지금 1집 앨범을 준비중인데 자신들의 작업 과정을 모두 게시판에 올려두었다. 트래픽 문제로 지금은 잠시 닫혔으니, 꼭 한번씩 들어보시기 바란다. 이런건 무조건 다운받는게 이익이다.)

학교 발표 과제 때문에 며칠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던 나는 한동안 고무밴드 음악을 [무한 반복 재생]시켜두었다. 멍했던 머리가 조금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재주소년"이 알고봤더니 "일산소년"이더라...라는 뒷통수 타격의 기억,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 2집은 언제 나올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해체하고 1집을 냈다더라...라는 허무의 급습, "언니네 이발관" 1집을 사들고 '얘네 참 순수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걔네 밴드 이름이 일본 포르노 영화 제목이라며?"라던 황당한 깨우침을 잊지 않고 있는지라 이들, [고무밴드]에게 더더욱 관심이 간다.

어쨌든 일단 무조건 [Fanclub]이라는 게시판에다 글부터 올렸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팬이 되어본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 사실 손예진도 팬이었다기보다 얼굴이 예뻤기 때문에;;; - 그냥 팬이 되어보고 싶어지는 밴드였다.

올 여름에 앨범 나오면 한 장 사두었다가 팬싸인회에나 한 번 가볼까? 흐흐. 기분좋은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