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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이해와 오해는 글자 한 글자 차이?

우리말은 '아'해 다르고, '어'해 다르다. 굳이 '하나의 음운 때문에 의미 차이가 생겨나는 최소 대립쌍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생겨나는 무수한 사건/사고들을 접하게 된다.

사람이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애"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두 사람이 만나는 소개팅의 경우에는 불과 몇 시간 안에 상대방을 파악하려고 한다. 수십년을 같이 부대껴온 식구들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데 그 짧은 순간에 서로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가끔씩 걸려오는 친구 녀석들의 전화는 그런 불완전한 이해의 무서움을 실감하게 해준다. 녀석들이 털어놓는 불만의 대부분은 여친에 대한 오해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무슨 "연애의 도사"도 아니고, 1급 연애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녀석들은 여친과 싸우고 나면 다짜고짜 나에게 전화를 건다.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나의 조언(?)은 언제나 "너희들 문제는 너희들이 제일 잘 알테니까..."로 끝난다. 왜 연애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전화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녀석들은 늘 이런 식이다.

"야, 그래도 니가 말해준대로 하면 여친이 화가 풀리거든."

씨바, 가뭄난 논에 불지르는 심보인지, 화톳불 꺼질까 걱정하는 며느리마냥 신나게 염장을 지르는 이유는 뭐냐고요.. -_- 어쨌든 나의 몇 마디 말이 그들의 관계에 도움이 되었다니 나로선 고마워해야할 것 같긴 하지만... (서러운건 어쩔 수가 없다.)

친구 녀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신들만의 "오해"를 부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연인끼리 생겨나는 문제들의 대부분은 상대방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여자를 모르고, 여자는 남자를 모른다. 문제는 거기서부터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까, 내 마음은 몰라주고..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저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는 점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한게 아닐까. 내가 녀석들에게 늘 구박하는 건 단 한 가지 뿐이다.

"으이구, 이 미련 곰팅아. 여자들이 얘기할 땐 좀 들어줘라! 쫌!"

사실 방금 전에도 한 녀석이 투덜투덜대기 시작했다. 자기가 군대에서 얼마나 고생하다가 나왔는데 여친이 영 시원찮은 반응이란다. 나는 단호히 말해주었다.

"그러게, 누가 군대가래?"

그 녀석은 자신의 여친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 여친이 나에게 얼마나 자주 연락을 하고, 얼마나 자주 그 녀석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여친과 내가 친하다는 사실에 은연중에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칠 때도 있을 정도다.

바보 자식. 스스로 여친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여친한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는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그것도 군인이란 자식이.

이해와 오해는 글자 하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글자 하나를 바꾸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되돌아봐야할 필요가 있다. 이해를 오해로 바꾸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오해를 이해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린 많은 인내와 깊은 배려가 필요할테니 말이다.

또 전화가 왔다. 한결 나아진 목소리다. 저녁 먹자고 하네. 짜식..
그래도 이 친구, 군대에서 개고생하다가 왔을텐데 맛난거나 좀 먹이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