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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나는 그래도 김치를 먹을란다

난리났다. - 그 난리의 원인은 "호들갑"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 온 사방에서 마치 파는 김치는 한 쪼가리라도 씹으면 당장 중금속에 오염되거나 기생충에 감염되어서 온 방안을 뒹구르게 될 것처럼 말한다.

얼마전 중국산 김치에서 중금속이 나왔네 어쩌네 할 때도 나는 점심 시간에 식당에서 나오는 김치, 아무 생각없이 잘 먹었다. 며칠전에 중국 쪽에서 '니네 김치에서 알 나왔다, 요놈들아!'할 때는 '이제 대놓고 분쟁만드는구나. 심상치 않네' 싶었더니 급기야 오늘 식약청에서 발표하고, 아주 쑈를 한다.

'중국산 김치에서 중금속 나왔어요! 먹지 마세요!"하고, "우리 김치는 괜찮아요! 믿고 드세요!"하더니, "우리 김치에서도 알 나왔어요! 먹지 마세요!"하다가 "그래도 안죽으니 먹어도 괜찮아요!"란다.



내가 너무 무신경하게 사는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온 나라가 조류독감 때문에 닭 한 마리 먹지 않을 때, 양계장에서 폐사한 닭들 태우는 모습이 연일 9시 뉴스에 등장할 때, 군대에서 매일 닭고기 반찬을 먹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애들은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정부에서 자꾸 이런 식으로 말하고, 언론이 거들어주면 결국 우린 "자급자족"해서 먹고 살거나 굶어 죽어야 된다. "만두 파동" 잊었나? 마치 처음엔 온갖 만두가 다 못먹을 음식인양 말하다가 나중엔 허겁지겁 만두먹기운동 따위나 벌이고.

좀 냉정히 생각해보자. 배추에서 기생충알 나온게 새삼스러운가? 밭에서 기른 채소에 기생충알 나올 수도 있는거지. 무기농 채소에 벌레먹은 구멍있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댄다. 농약안친 증거라고. 그럼 벌레가 살아있는데 온갖 세균은 살아있겠나?

당장 현미경 갖다놓고 우리집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 꺼내서 조사해보면 아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몇 가지나 될까 싶다. 된장, 고추장은 안봐도 뻔하고, 묵은 김치, 각종 장아찌, 젓갈류 등등에서 세균 안나오란 법 없다.

분명히 "파는"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검출된건 잘못된 일이고, 벌 받을 일이다. 그런데 그게 만드는 과정에서 들어간건지, 원래 배추에 있던건지도 확인안한 상태에서 (이제 조사한다고 하더구만) 덥석 발표부터 하고보는 건 뭔 심보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 먹을 거리를 직접 키울 수 없어서 돈을 주고 사다먹고 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걸 곧이곧대로 믿다보면 도대체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다. 만두도 그랬지, 닭고기 그랬지, 돼지고기 그랬지, 생선 그랬지, 어패류 그랬지, 라면 그랬지, 햄버거 그랬지, 이번엔 김치까지... 그리고 늘 마지막엔 한 마디 붙이더라. "대신 이건 이렇게 요리하고 끓여먹고, 데쳐먹고, 삶아먹으면 안전합니다."

어쩌라고. 먹을까, 말까? 응?!

나는 일단 언론에서 크게 떠들어댄 음식은 별 신경쓰지 않고 먹는다. 예전에 만두 파동났을 때, 우리 학교에서 파는 만두, 나만 혼자 시켜먹었다. 덕분에 아저씨가 만두 엄청 많이 주셔서 배불리 잘 먹었다. 이번에도 나는 식당에서 주는 김치, 그냥 잘 먹을거다.

생각해보라. 그 난리를 치고 떠들었는데 멀쩡하지 않은 음식이 돌아다닐까? 온세상에서 "그거 먹으면 안돼요!"라고 외치는데 진짜 먹으면 안되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겠나. 나 같아도 안판다. 게다가 언론에서 떠들지 않았던들 우린 그냥 모르고 잘 먹었을거다. 달라진건 "의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지금와서 기생충이 들었네 마네 하는건 이미 내 뱃 속에 들어갔을 기생충을 꺼내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말이다.

한 번만 먹어도 구토와 복통을 일으키는 식중독균 따위만 아니라면 나는 왠만한 음식은 그냥 먹을란다. 제철에 나는 음식, 잘 익힌 음식만 먹어도 탈이 날 걱정은 화악 줄어든다. 한 여름에 서울에서 회 찾고, 한 겨울에 수박찾으면 병날 확률은 그만큼 올라가는게 자연의 이치 아닌가.

이미 내 뱃 속에 들어와있을 벌레들이 좀 걱정되긴 했는데 곧 죽을 병은 안걸린다고 하니 화장실이나 열심히 다닐란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병 걸릴 일이 없다. 그런데 지금 잘 못먹게 생겼으니 이 책임을 나라에 떠넘길 수 있을까 몰라.

어쨌거나 제발 좀 먹는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짓은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식약청도 뒷북 좀 그만치고. 이번 김치 파동, 결코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휴우... 엄하게 피해 입는 사람들 많아지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