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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아이들이 웃어제낀 이유

나는 이번 학기에 보충수업과목을 3개나 개설하게 되었다. (그 복잡한 속사정이야 눈물없이 볼 수 없으니 일단 생략.) 그 중 하나가 "현대문학"이다. 그나마 수업연구의 부담을 덜어보고자 시중에 나온 문제집을 하나 선택해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현.대.문.학."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중압감은 역시나 만만치 않다.

주로 야자시간이나 주말에 수업 준비를 하는데 지난 시간에는 조금 특별한(?) 수업을 했다. 첫 시간에는 현대 문학에 대한 간략한 안내 정도로 마쳤으니 제대로 된 첫 수업인지라 괜히 긴장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현대문학을 선택한 아이들 중에는 유난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것은 곧 내 수업이 부실할 경우, 바로 티가 나게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첫 단원인 [현대시]를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궁리하다 예전에 써둔 내 시를 써먹어보기로 했다. 눈 딱 감고 칠판에 내가 쓴 시를 주욱 죽 써내려갔다. 참 민망했지만 일단 아이들에겐 지은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내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예로 들어가며 시의 운율, 이미지, 상징 등을 설명하고 시 감상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그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내가 내 시를 설명하면서 그렇게 "억지로 짜맞추어가며" 설명하노라니 얼굴이 홍당무가 될 지경이었지만 정색을 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자, 이제 이 시의 지은이를 알려주겠습니다."

칠판에 내 이름 석자를 적어 놓는 순간, 약 3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아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쓴거에요?" "진짜 선생님이 썼어요?"라는 질문에 수.줍.게. "응, 내가 대학 다닐 때 쓴거야."라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호탕하게, 기세좋게, 마구 비웃어가며...

그 중 한 여학생이 외친다. "선생님, 너무 불쌍해 보여요.." OTL..

어쨌든 그 수업 이후로 정규 문학 시간에도 종종 아이들은 그 시를 언급한다. 작가와 시적 화자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그 시를 들먹이며 "그 시에서 선생님이 말해준거, 그거죠?"라고 하는 녀석도 있다. 굉장히 민망하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시를 쬐끔 재밌어 하게 된 것 같다.


+ 문제의 그 시를 링크해 둔다. 이 시는 대학교에서 문학반 활동을 할 때, 선배 누나가 쓴 시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시다. 그 누나에게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이건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 표절한거에요?!"라고 할까봐 무서워서; 어쨌든 그 시의 제목은 "비 오던 날"이다.

+ 기왕 이렇게 된 거, 소설 파트 진도를 나갈 땐 내가 쓴 소설을 한 번 써먹어볼까 생각중이다. 나도 은근히 즐기고 있는가보다. 허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