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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쪽지


선생님.
기분 좋은 봄날 아침 ^^*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우려고
안보이지만 열심히 움틀거리는
새싹들. 긴 긴 겨울 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하는 꽃들처럼,
오늘 하루도 힘내시구요! 좋은 하루 되세요♥
봄의 활기찬 분위기를 담아서... ^^

오늘 아침에 발견한, 어느 학생이 내 신발장에 넣어둔 쪽지.
봄기운 가득 머금으며 씨익 웃었다.


올빼미 선생님께.
선생님 좀전 3교시 2학년 O반에서 문학시간에 예의 없게 행동한거 반성합니다.
무조건 제가 옳다고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했는데요 4교시 때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닌것 같아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예의 없던 행동 용서해 주세요

2006. 4. 19. 수
- 2학년 O반
OO 드림 -



OO이는 평소 수업태도도 좋고 반응도 잘하는 아이이다. 그런데 오늘 수업이 채 끝나기 전에 (진도는 나갔지만 아직 종은 울리지 않은 상태) 사물함에 책을 가지러 갔다가 일어서 있던 다른 아이들 몇 명과 함께 앞으로 불려나왔다. 평소의 OO이 답지않게 표정도 싹 굳어있고 말대답도 꼬박꼬박했다. 뭔가 일이 생겼나보다..싶어서 더 말하지 않고 일단 들여보냈다. 그럴 때 괜히 앞에서 더 화를 내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학생일 때, 그런 선생님이 참 싫었던 기억은 있었으니까.)

맛있게 점심을 먹고 다음 수업을 하고 있는데 OO이가 찾아왔다. 머뭇머뭇하더니 커피캔 하나를 저 쪽지와 함께 수줍게 내밀었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한 채 물었다. "아니, 이게 왠 거야?" (사실 속으로는 또 한 명의 내 팬이 생겼구나..허허..라고 생각했지만;;;)

자초지종을 듣고나서 "아유, 이 녀석아! 괜찮아. 선생님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뭐. 그냥 평소 너답지 않게 그러길래 뭔 일 있었나보다..했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녀석이 갑자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게 아닌가.

순간 당황했다. 일단 복도로 데리고 나가서 창문에 기대어 얘기를 좀 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거 아니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길래 "내가 가르쳐줄까? 사춘기라서 그런거야, 짜샤."라고 농을 걸었더니 그제서야 피식 웃는다. 봄비는 꽃피라고 내리는 게 봄비지, 네 눈에서 떨어지는 게 봄비는 아니라는 말도 했다. 그제서야 좀 얼굴이 풀린다.

큰 일이 있었던 건 아니란 걸 알고 커피는 잘 마시겠다고 하며 보냈다. 저~쪽에서 기다리던 같이 온 친구에게 쪼르르 달려갔더니, "어떻게 해~"라며 징징거린다. 생각해보니 자기가 운 게 엄청 쪽팔렸나보다.

봄비가 내리고 있다. 이 여린 아이들에게, 덩치만 컸지 아직은 자기 속내를 보듬을 줄 모르는 이 어린 아이들에게 따뜻한 봄비가 스며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