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직과목을 수강하고 있을 때만 해도 나는 "비고츠키"의 발판 이론을 꽤나 좋아했다. "지식은 학습자가 스스로 재구성하는 것"이라는 구성주의와 더불어 "교사는 학생들의 발판"이어야 한다는 것과 "개별 학습자들은 그 발판을 딛고 발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는 점은 학생 개개인들을 굉장히 능동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그렇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때문이었다.
교생실습 이후, 나는 피아제의 행동주의가 더 가슴에 와닿기 시작했다. 소위 "한 손에는 당근, 한 손에는 채찍"이라는 "정적강화와 부적강화, 그리고 벌"은 학생들의 행동 변화를 눈 앞에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 "선생니임~"으로 불리운지 한 달 남짓한 지금, 나는 그 둘 사이의 어디매쯤에서 방황하고 있다. "사탕" 하나에 목숨거는 녀석들, "조용히 하자"보다 "떠들지 마!"라는 게 더 효과(?)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역시 학생들은 적절한 상벌이 최고의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직은 매를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별로 없는 지금(물론 가끔은 사자후와 함께 강렬 눈빛 공격과 저음 이펙트를 사용하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여전히 나는 그들의 발판이어야 함을 되새겨본다.
"선생님한테 이쁨받으려고 공부 열심히 할거예요 ^^*ㅋㅋ"
녀석에겐 내 빛나는 외모가 동기부여가 된 것일까. 어쨌든 나로 인해 또 한 명의 학생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만은 기분좋은 일이다. 아이들이 나에겐 "교사 생활의 동기 부여 요소"가 되나보다.
수업 시간에 내 말 한 마디, 내 목소리톤의 미묘한 변화, 내 눈빛과 표정의 강약에 따라 울고 웃는 녀석들을 보면 허튼 생각을 할 수가 없다. 1시간 할 수업준비도 2시간 하게 되고, 한 번 읽은 본문도 두 번, 세 번 읽게 된다. 예로 들어주는 농담조차 깨알같이 받아적는 녀석들도 있어서 예시문 하나도 섣불리 말할 수 없다. 오늘은 2주 전에 얼핏 지나가는 말로 불러줬던 예문이 틀렸음을 지적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들이 있음에 나는 게을러질 수가 없다.
쉬는 시간, "선생니이임~"하며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들도 이쁘지만 수업시간의 내 농담 한 마디에 조용히 씽긋 웃는 녀석들, 이 화창한 봄날에 점심까지 배불리 먹고 난 5교시, 꾸벅꾸벅 졸다가도 내 눈빛 한 번에 애써 졸음을 참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마음 속으로 크게 크게 웃게 된다.
이번 주에 시험 출제와 관련된 일과 기타 업무가 마무리되는대로 시험 후 첫 수업을 한 번 준비해봐야겠다. 그 흐뭇한 녀석들에게 문학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이내 가슴 가득하게 채워줄 그 무엇임을 알려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좋은 점이라면 "학생들과 함께 지낸다"는 점일 것이다. 오늘 같은 날엔 야자 감독 후 축 처질법한 발걸음도 씽씽 내딛게 된다.
훈장 똥은 개도 안먹는다지만 냄새는 덜 날 것이 분명하다.
교생실습 이후, 나는 피아제의 행동주의가 더 가슴에 와닿기 시작했다. 소위 "한 손에는 당근, 한 손에는 채찍"이라는 "정적강화와 부적강화, 그리고 벌"은 학생들의 행동 변화를 눈 앞에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 "선생니임~"으로 불리운지 한 달 남짓한 지금, 나는 그 둘 사이의 어디매쯤에서 방황하고 있다. "사탕" 하나에 목숨거는 녀석들, "조용히 하자"보다 "떠들지 마!"라는 게 더 효과(?)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역시 학생들은 적절한 상벌이 최고의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직은 매를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별로 없는 지금(물론 가끔은 사자후와 함께 강렬 눈빛 공격과 저음 이펙트를 사용하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여전히 나는 그들의 발판이어야 함을 되새겨본다.
"선생님한테 이쁨받으려고 공부 열심히 할거예요 ^^*ㅋㅋ"
녀석에겐 내 빛나는 외모가 동기부여가 된 것일까. 어쨌든 나로 인해 또 한 명의 학생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만은 기분좋은 일이다. 아이들이 나에겐 "교사 생활의 동기 부여 요소"가 되나보다.
수업 시간에 내 말 한 마디, 내 목소리톤의 미묘한 변화, 내 눈빛과 표정의 강약에 따라 울고 웃는 녀석들을 보면 허튼 생각을 할 수가 없다. 1시간 할 수업준비도 2시간 하게 되고, 한 번 읽은 본문도 두 번, 세 번 읽게 된다. 예로 들어주는 농담조차 깨알같이 받아적는 녀석들도 있어서 예시문 하나도 섣불리 말할 수 없다. 오늘은 2주 전에 얼핏 지나가는 말로 불러줬던 예문이 틀렸음을 지적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들이 있음에 나는 게을러질 수가 없다.
쉬는 시간, "선생니이임~"하며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들도 이쁘지만 수업시간의 내 농담 한 마디에 조용히 씽긋 웃는 녀석들, 이 화창한 봄날에 점심까지 배불리 먹고 난 5교시, 꾸벅꾸벅 졸다가도 내 눈빛 한 번에 애써 졸음을 참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마음 속으로 크게 크게 웃게 된다.
이번 주에 시험 출제와 관련된 일과 기타 업무가 마무리되는대로 시험 후 첫 수업을 한 번 준비해봐야겠다. 그 흐뭇한 녀석들에게 문학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이내 가슴 가득하게 채워줄 그 무엇임을 알려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좋은 점이라면 "학생들과 함께 지낸다"는 점일 것이다. 오늘 같은 날엔 야자 감독 후 축 처질법한 발걸음도 씽씽 내딛게 된다.
훈장 똥은 개도 안먹는다지만 냄새는 덜 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