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의 일이었다. 식판을 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뒤에 오신 X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선생님, XX이랑 얘기하셨어요?"라며 말을 건네신 그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오늘은 시험 후 첫 수업이었으므로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점수를 확인하도록 했다. 그 때 그 아이에게 "넌 몇 점이나 맞았냐?"라고 물었고 녀석은 대답 대신 굉장히 부끄러워했다. 점수를 확인해보니 찍은 것보다 점수가 안나왔더라. 짐짓 웃으며 "심했다. 아무리 찍었어도..(이 뒤에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기억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가슴아프고 미안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녀석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지만 여느 아이들처럼 점수 얘기가 나오니까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업을 마쳤었다.
"XX이가 쉬는시간에 훌쩍거리고 있더라구요."
순간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선생님께서 "아유, 애들이 원래 예민해요. 전 뭐 우리반 애들한테 발로 풀었냐고도 하는데요뭐."라며 나의 실수를 이해해주시려는 말씀을 해주셨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밥을 먹는 내내, 그 아이의 표정이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은 영어회화 선생님과 식후땡;;을 한 대 피우며 이야기를 했다.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참 많이 달라서 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 선생님이 한 마디 해주시길..
"Boys like rock, girls like flower."
원어민 선생님의 짧은 한 마디가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한 시간 뒤, 옆 반에 볼일이 있어 들른 김에 녀석을 만나러 가봤다. 사실은 일부러 옆반 핑계삼아 들러본 것이다. 괜히 그 아이만 보러가면 다른 아이들이 또 괜한 오해를 할까봐서.
복도로 불러내서 이야기를 했다. 이러저러했다는데 미안했다고. 이젠 풀어졌냐고 물었더니 씨익 웃는다. 녀석은 늘 해맑게 웃는 아이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문학샘~"이라며 멀리서도 반갑게 외쳐주는 아이. 늘 그렇게 웃던 아이에게, 스스로도 자신의 점수로 고민하고 있을 아이에게 나는 또 하나의 돌을 던져버린 것이다.
아이들에게 시험끝났다고 너무 풀어지지 말라고 엄준한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느슨해져버린 내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게 다짐했는데 채 몇 달이 지나기도 전에 비슷한 실수를 또 저지르고 말았으니...
이번 주말에는 그 아이에게 귀걸이를 돌려주는 날이다. (지난 달에 빼앗아놓았던 것인데 시험 끝나면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렇다. 나는 학생부 소속인 것이다. OTL..) 귀걸이를 돌려주면서 녀석과 좀 더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내 뒷담화를 "까는" 녀석들의 앙칼진 눈빛보다, 눈 앞에서 맞먹으려는 얄미운 얼굴들보다, 나로 인해 순식간에 시무룩해져버리는 녀석들의 표정이 훨씬 가슴 아픈 것 같다.
미안하다. XX야. 많이 속상했겠구나... 앞으론 더 조심할께.
나는 네모난 교실에서, 우뚝 박힌 바위와 물결치는 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나 역시 온전히 내 몫을 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