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XX
- 2006년 여름, 후덥지근한 장마 중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메일부터 확인해봤어. 생각보다 긴 편지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잘 읽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빈 칸이 많아서 길어졌지만..후후..) 많이 늦긴 했지만 바로 답장을 해주어야할 것 같아서 이 야심한 시각에 키보드 톡톡, 두드린다.
글쎄.. 나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어렵구나. 하지만 네 말대로 "난감"해 하고 있는건 아니니까 그 점은 너무 염려치 않기를 바래. 이런 이야기들을 내게 해주어서 고맙고, 너도 조금은 속이 좀 후련(?)해졌기를 바란다.
우선 내 이야기를 좀 하는 게 나을 듯 싶네. 알다시피 나는 OO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처음 이 학교에서 너희들을 가르치게 되었단다. 내가 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건 군대를 다녀온 이후니까 꽤 많이 늦었지. ^^; 어쨌든 교생실습 이후로 교사가 되고싶다는 마음을 먹었고, 지금의 내 생활에 참 만족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는 중이야.
나는 중고등학교를 모두 시커먼 남자녀석들과 함께 다녀서 "여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저언혀 모르고 있었지.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참, 나는 재수학원에 다니는 남동생만 하나 있어.) 첫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굉장히 막막했었단다. 걱정이나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내가 아직 잘 모르는 여학생들만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많이 고민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야. 크...
내 수업 시간엔 자주 하는 얘기지만 나는 정말 고등학생 때 문학이 재미있었단다. 수학은 책도 보기 싫었지만;; 소설책이나 시집을 읽는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 그러다가 고3 때 정신이 번쩍 들어서 - 국문학과는 가고 싶었고, 먹고 살려면 좀 좋은 학교를 나오면 이득이 되겠다고 생각했었지 - 3월의 첫 모의고사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OO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굉장히 즐겁게 대학생활을 했어.
어쨌든 3월이 되었고, 너희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한편으론 참 많이 설레이기도 했고, 떨리기도 했어. 너를 처음 만난 것도 그 즈음이었지? 야자 감독하러 7반에 들어갔다가 "이름 예쁘네..."라고 했던게 너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때 같은데. 사실 3월초에는 수업시간에 학생들 앞에 서면 참 묘한 느낌이었어. 내가 벌써 이렇게 학생들 앞에서 가르칠 수 있는 입장이 되었구나 싶기도 하고, 실수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이 재미난 문학을 어떻게 재미있게 가르쳐줄까 고민도 하면서...
두세번 야자 감독 때 봤던 네가 반갑게 날 맞아줄 때 참 기분이 좋았단다. (아, 물론 지금도 네가 웃는 얼굴로 날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곤 해. 손으로 얼굴을 감싸서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흐흐) 내가 학생들에게 어렵지 않은, 어쩌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거란 작은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되었지.
그러다 언젠가 네가 "왜 저는 딴 애들처럼 살갑게 안해주세요?"(였나? 정확히는 기억못하겠다만 그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었어) 했던 적이 있었지? 사실 그 때만 해도 여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나 고민중이었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학생들과 달리 굉장히 예민한 것 같았고 (내 말, 내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질만큼) 그만큼 나도 아이들을 대할 때 조금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했거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적응(?)된 것 같아. 아마 너희들에게 슬슬 농담을 걸 수 있었던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네 편지를 읽다보니 네 남자친구에 대해서 내가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했나보구나. 음.. 이렇게 말하면 조금 섭섭하려나? 사실 나에겐 너도, OO이도(남친 이름이 OO이 맞지?) 소중한 제자인걸.. 물론 네가 OO이보다 더 정이 가는건 사실이지. 수업도 들어가지 않는 날 기꺼이 교무실까지 찾아와주니 말이다. ^^
네 친구의 이야기가 맞는 말 같다. 나와 네 남친을 두고 고민하는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듯 하네. 네가 날 이만큼이나 좋아해주고 또 내가 널 아끼는 것과 너와 남친이 서로 좋아하는건 많이 다른 종류의 감정이라고 생각해.
이건 내가 널 어리다고 무시해서 하는 말도 아니고 - 네 말대로 꼬맹이 마음이라고 치부해버리는건 절대 아니란다 - "난 선생이고, 넌 제자야!" 따위의 유치한 대사를 읊으려는 것도 아니야. 다만 네가 날 생각해주는 그 아름다운 마음이 괜한 걱정이나 고민 때문에 아프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란다.
"아직 추억이 아니잖아요"라는 네 말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구나. 그래, 나 역시도 그랬지만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그 격한 마음들보다 더 중요한 건 없지. 오늘 일부러 네게 편지를 써보라고 한 것도, 이렇게 답장을 하고 있는 것도 이미 네가 알고 있을, 여기저기서 한번쯤 들었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을 반복하기 위해서는 아니야. 네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나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조금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네 편지를 보면서 참 고마웠다. 꺼내기 힘든 말이었을텐데 말이지.
한편으론 걱정도 조금 된다. 너의 사람보는 안목에 대해서.. 나, 알고보면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닐텐데 말이야. 냐하하~ (농담이야, 농담.. 괜히 또 오해할라.) 사실 난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네가 날 좋아해주는 것도 네가 본 몇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굉장히 좋은 나의 모습"만을 봐주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내 수업듣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아직 한~참 모자란 교사야.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경험해야지.. 참, 이제 곧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시작되면 내 실체(!)를 알게 되겠네뭐.. "선생님, 이러신줄 몰랐어요, 실망이에요!"하는건 아닐까 모르겠네;;;
명색이 문학 선생님인데도 내용이 참 두서가 없는 것 같다; 미안. 아무튼 난 있는 그대로의 XX이 네 모습을 참 좋아하고 있단다. 수업시간에 졸다가 내 눈빛에 흠찟 정신차리는 녀석들도, 한참을 떠들다가 나와 쑥쓰럽게 눈을 마주치며 씨익 웃어버리는 녀석들도 나는 좋아해.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이니까. ^^
XX아.
너의 그런 마음들, 나에 대한 감정들, 네가 글로 다 쓰지 못한 부분은 내가 다 헤아릴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또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하지도 말고 지금처럼 즐겁게 지내자꾸나.
네가 남자친구와 사귀는 것도, 나를 좋아해주는 것도,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모두 즐거운 우리 삶의 한 부분이잖아. 네 마음 때문에 그런 즐거움의 일부가 사라져버린다면 내가 실수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될 것 같네...
쓸데없이 길어진 편지였지만 기분은 참 좋다. 어디가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런 못난이를 이만큼이나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
이번 장마가 끝나고나면 너도 나도 한뼘쯤 훌쩍 자라게 될 것 같구나. 2학기 때는 더 좋은 선생님, 더 좋은 학생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죄송할 것도, 난감해할 것도 없어. 고마운 일인걸! 너에게도 나의 답장이 기분좋은 웃음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일은 더 행복한 하루가 될 것 같구나.
글쎄.. 나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어렵구나. 하지만 네 말대로 "난감"해 하고 있는건 아니니까 그 점은 너무 염려치 않기를 바래. 이런 이야기들을 내게 해주어서 고맙고, 너도 조금은 속이 좀 후련(?)해졌기를 바란다.
우선 내 이야기를 좀 하는 게 나을 듯 싶네. 알다시피 나는 OO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올해 처음 이 학교에서 너희들을 가르치게 되었단다. 내가 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건 군대를 다녀온 이후니까 꽤 많이 늦었지. ^^; 어쨌든 교생실습 이후로 교사가 되고싶다는 마음을 먹었고, 지금의 내 생활에 참 만족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는 중이야.
나는 중고등학교를 모두 시커먼 남자녀석들과 함께 다녀서 "여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저언혀 모르고 있었지.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참, 나는 재수학원에 다니는 남동생만 하나 있어.) 첫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굉장히 막막했었단다. 걱정이나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내가 아직 잘 모르는 여학생들만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많이 고민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야. 크...
내 수업 시간엔 자주 하는 얘기지만 나는 정말 고등학생 때 문학이 재미있었단다. 수학은 책도 보기 싫었지만;; 소설책이나 시집을 읽는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 그러다가 고3 때 정신이 번쩍 들어서 - 국문학과는 가고 싶었고, 먹고 살려면 좀 좋은 학교를 나오면 이득이 되겠다고 생각했었지 - 3월의 첫 모의고사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OO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굉장히 즐겁게 대학생활을 했어.
어쨌든 3월이 되었고, 너희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한편으론 참 많이 설레이기도 했고, 떨리기도 했어. 너를 처음 만난 것도 그 즈음이었지? 야자 감독하러 7반에 들어갔다가 "이름 예쁘네..."라고 했던게 너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때 같은데. 사실 3월초에는 수업시간에 학생들 앞에 서면 참 묘한 느낌이었어. 내가 벌써 이렇게 학생들 앞에서 가르칠 수 있는 입장이 되었구나 싶기도 하고, 실수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이 재미난 문학을 어떻게 재미있게 가르쳐줄까 고민도 하면서...
두세번 야자 감독 때 봤던 네가 반갑게 날 맞아줄 때 참 기분이 좋았단다. (아, 물론 지금도 네가 웃는 얼굴로 날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곤 해. 손으로 얼굴을 감싸서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흐흐) 내가 학생들에게 어렵지 않은, 어쩌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거란 작은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되었지.
그러다 언젠가 네가 "왜 저는 딴 애들처럼 살갑게 안해주세요?"(였나? 정확히는 기억못하겠다만 그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었어) 했던 적이 있었지? 사실 그 때만 해도 여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나 고민중이었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학생들과 달리 굉장히 예민한 것 같았고 (내 말, 내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질만큼) 그만큼 나도 아이들을 대할 때 조금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했거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적응(?)된 것 같아. 아마 너희들에게 슬슬 농담을 걸 수 있었던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네 편지를 읽다보니 네 남자친구에 대해서 내가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했나보구나. 음.. 이렇게 말하면 조금 섭섭하려나? 사실 나에겐 너도, OO이도(남친 이름이 OO이 맞지?) 소중한 제자인걸.. 물론 네가 OO이보다 더 정이 가는건 사실이지. 수업도 들어가지 않는 날 기꺼이 교무실까지 찾아와주니 말이다. ^^
네 친구의 이야기가 맞는 말 같다. 나와 네 남친을 두고 고민하는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듯 하네. 네가 날 이만큼이나 좋아해주고 또 내가 널 아끼는 것과 너와 남친이 서로 좋아하는건 많이 다른 종류의 감정이라고 생각해.
이건 내가 널 어리다고 무시해서 하는 말도 아니고 - 네 말대로 꼬맹이 마음이라고 치부해버리는건 절대 아니란다 - "난 선생이고, 넌 제자야!" 따위의 유치한 대사를 읊으려는 것도 아니야. 다만 네가 날 생각해주는 그 아름다운 마음이 괜한 걱정이나 고민 때문에 아프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란다.
"아직 추억이 아니잖아요"라는 네 말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구나. 그래, 나 역시도 그랬지만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그 격한 마음들보다 더 중요한 건 없지. 오늘 일부러 네게 편지를 써보라고 한 것도, 이렇게 답장을 하고 있는 것도 이미 네가 알고 있을, 여기저기서 한번쯤 들었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을 반복하기 위해서는 아니야. 네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나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조금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네 편지를 보면서 참 고마웠다. 꺼내기 힘든 말이었을텐데 말이지.
한편으론 걱정도 조금 된다. 너의 사람보는 안목에 대해서.. 나, 알고보면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닐텐데 말이야. 냐하하~ (농담이야, 농담.. 괜히 또 오해할라.) 사실 난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네가 날 좋아해주는 것도 네가 본 몇 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굉장히 좋은 나의 모습"만을 봐주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내 수업듣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아직 한~참 모자란 교사야.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경험해야지.. 참, 이제 곧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시작되면 내 실체(!)를 알게 되겠네뭐.. "선생님, 이러신줄 몰랐어요, 실망이에요!"하는건 아닐까 모르겠네;;;
명색이 문학 선생님인데도 내용이 참 두서가 없는 것 같다; 미안. 아무튼 난 있는 그대로의 XX이 네 모습을 참 좋아하고 있단다. 수업시간에 졸다가 내 눈빛에 흠찟 정신차리는 녀석들도, 한참을 떠들다가 나와 쑥쓰럽게 눈을 마주치며 씨익 웃어버리는 녀석들도 나는 좋아해.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이니까. ^^
XX아.
너의 그런 마음들, 나에 대한 감정들, 네가 글로 다 쓰지 못한 부분은 내가 다 헤아릴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또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하지도 말고 지금처럼 즐겁게 지내자꾸나.
네가 남자친구와 사귀는 것도, 나를 좋아해주는 것도,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모두 즐거운 우리 삶의 한 부분이잖아. 네 마음 때문에 그런 즐거움의 일부가 사라져버린다면 내가 실수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될 것 같네...
쓸데없이 길어진 편지였지만 기분은 참 좋다. 어디가서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런 못난이를 이만큼이나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
이번 장마가 끝나고나면 너도 나도 한뼘쯤 훌쩍 자라게 될 것 같구나. 2학기 때는 더 좋은 선생님, 더 좋은 학생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죄송할 것도, 난감해할 것도 없어. 고마운 일인걸! 너에게도 나의 답장이 기분좋은 웃음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일은 더 행복한 하루가 될 것 같구나.
- 2006년 여름, 후덥지근한 장마 중에..
올빼미.
사랑하는 나의 제자가 올여름의 장마를 무사히 견뎌낼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