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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수능 감독관의 하루

카풀하고 가던 선생님과 같이 가지 않는 관계로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섰다. 교문 입구에선 벌써 응원이 한창이더라. 감독관 출근부에 도장찍고 대기실로 갔다. 컵라면과 약간의 간식, 녹차와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1교시 도중에 SDF[각주:1]를 느낄 것 같아서 아침을 먹지 않았었는데 1교시는 감독이 없길래 냉큼 라면 한 사발을 챙겨 먹었다.

전날 2시간 정도 감독관 연수를 받았고 두터운 팜플렛[각주:2]도 받았지만 긴장되는건 마찬가지더라.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번뜩 내 동생 생각이 났다. 부디 무사히 치를 수 있기를...

1교시가 끝나고 드디어 내가 들어갈 차례. 나는 1교시는 휴식, 2교시는 제1감독관, 3교시는 제2감독관, 4교시는 제1감독관으로 배정받았다. (각 고사장별 감독관은 매 교시 시작 전에 공고된다.) 2교시는 제1감독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들어간 선생님께서 많은 일들을 해결해주셨다.

예비령이 울리면 답안지와 문제지 봉투를 뜯어서 매수를 확인한다. 결시자를 파악해서 현황표를 작성하고 복도감독관에게 전달한다. 답안지를 나누어주고 남은 답안지 매수를 확인한다. 문제지를 나눠주고 남은 문제지 매수를 확인한다.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동안 응시원서철을 들고 수험표와 대조해가면서 본인 확인을 한다. 머리 긴 학생, 안경 쓴 학생, 고개 숙인 학생들의 얼굴을 일일이 비교해봐야하는데 열중하고 있는 학생이 최대한 신경쓰이지 않도록 해야한다. 답안지에 수험번호와 이름, 응시유형 등을 정확히 표기했는지 확인 후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부정 행위를 하는지 감독한다. 너무 돌아다니거나 크게 기침을 하는 등 수험생들의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리가 뻣뻣해지고 허리가 땡길 무렵 끝날 때가 다 되어간다. 종료 10분 전임을 알려주고 여분의 답안지와 수정테이프를 확인해둔다. 학생이 요청하면 바로 달려가서 해결해준다. 끝종이 울리면 답안지를 걷고 문제지를 걷고 매수를 확인한다. 답안지 마킹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상이 없으면 학생들을 퇴실시킨다. 4교시의 경우는 3명의 감독관이 들어가서 30분마다 한 번씩 문제지를 걷어야했다. 2분안에 다음 시험 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더 정신없더라.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큰 움직임 없이 오랫동안 서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잔뜩 긴장하고 있던 학생들의 표정과 딱딱했던 시험장의 공기였다. 내가 어찌 수능을 치뤘을까 싶기도 했고, 안간힘을 쓰는 학생들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대학수학능력"이 이 시험으로 얼마나 "측정"될 수 있길래... 서있기가 힘들어서 "어서 끝났으면..."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동생 생각에, 눈 앞에서 힘들어하는 학생들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기도 했다.

어쨌든 끝났다. 적어도 다음달 15일까지는 다들 마음 편히 지내리라. 고3 담임 샘들도, 학부모들도, 훌쩍이며 교문을 나서던 그 아이도 성적표를 받아들기 전까지는 그래도 여유있게 지낼 것이다. 숨막히던 고사장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언제까지 이 딱딱한 공기를 견뎌내야할 것인지 조금 착잡해졌다.

일당(?)으로 10만원을 받았다. 집에 와서 동생에게 봉투째 건네주었다. 지난 12년 아니 13년간(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의 노력을 단 몇 시간의 시험으로 평가받았으면서도 녀석은 빙긋 웃었다.

길었던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

  1. Suddenly DDong Feel의 약자. 똥마렵다는 소리다. 수업중 "선생님! SDF요!"라고 외치던 녀석이 있었음; [본문으로]
  2. 일종의 감독관 행동 지침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