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밤을 사랑한다. 한밤중의 고요와 새벽 어스름의 고즈넉함을 좋아하고, 가끔 먹게되는 야식의 향미와 기지개 한 번과 함께 내뱉는 담배 연기 한 모금을 즐긴다.
이번 주는 중간 고사 기간인지라 더더욱 밤을 사랑해주고 있는데, 나도 올빼미의 탈을 쓴 인간인지라 24시간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샐 수는 없다. 나에겐 가장 안타까운 점이다. 하루를 바삐 보낼 수 있음에 감사드리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벌써 10달이 지난 2004년의 달력을 들여다보노라면 짧은 하루하루가 아쉽게만 느껴진다.
부산한 낮을 보낸 후에 맞이하는 고요한 밤은 달콤한 휴식이자 위안의 시간이다. 조용하게 몰두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가질 수 있으며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미묘한 감정의 결을 추스려볼 수도 있다.
밤을 사랑한다고 해서 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자는 시간만큼은 일정하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낮에 좀 하고, 밤에는 자라, 제발!"이라는 어머니의 끈질긴 성화에도 불구하고, 26개월 동안 새벽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야만 했던 생활을 체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밤을 사랑하다 느즈막한 시각에 일어나곤 한다.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은 직후라던가, 냉정한 판단이 요구되는 생활이라면 밤은 그야말로 어둠의 자식일 뿐이다. 나 역시 말없이 달려드는 밤의 비수에 몇 번이고 제대로 찔려본 적이 있기 때문에 예민한 감정이 발동된다 싶은 날에는 억지로라도 일찍 잠을 청하게 된다.
밤이 있기에 낮이 있고,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있으며, 멈출 줄 알기에 움직일 수 있다. 아옹다옹하던 오늘의 괴로움도 밤의 넉넉한 품 속에서 다독거리다보면 어느새 내일을 위한 반성이 된다. 태초의 어둠에서 세상이 태어난 것처럼 나는 밤 속에서 매일 새로운 삶을 꾸려나간다.
비록 밤을 사랑하는 일이 낮과 밤을 만들고 인간에게 잠을 허락해준 신의 뜻에 조금은 어긋나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는 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겠다. 신록을 예찬하고, 청춘을 예찬하고, 잠을 예찬하던 여러 선인들처럼 나는 오늘도 밤을 예찬한다.
이번 주는 중간 고사 기간인지라 더더욱 밤을 사랑해주고 있는데, 나도 올빼미의 탈을 쓴 인간인지라 24시간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샐 수는 없다. 나에겐 가장 안타까운 점이다. 하루를 바삐 보낼 수 있음에 감사드리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벌써 10달이 지난 2004년의 달력을 들여다보노라면 짧은 하루하루가 아쉽게만 느껴진다.
부산한 낮을 보낸 후에 맞이하는 고요한 밤은 달콤한 휴식이자 위안의 시간이다. 조용하게 몰두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가질 수 있으며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미묘한 감정의 결을 추스려볼 수도 있다.
밤을 사랑한다고 해서 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자는 시간만큼은 일정하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낮에 좀 하고, 밤에는 자라, 제발!"이라는 어머니의 끈질긴 성화에도 불구하고, 26개월 동안 새벽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야만 했던 생활을 체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밤을 사랑하다 느즈막한 시각에 일어나곤 한다.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은 직후라던가, 냉정한 판단이 요구되는 생활이라면 밤은 그야말로 어둠의 자식일 뿐이다. 나 역시 말없이 달려드는 밤의 비수에 몇 번이고 제대로 찔려본 적이 있기 때문에 예민한 감정이 발동된다 싶은 날에는 억지로라도 일찍 잠을 청하게 된다.
밤이 있기에 낮이 있고,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있으며, 멈출 줄 알기에 움직일 수 있다. 아옹다옹하던 오늘의 괴로움도 밤의 넉넉한 품 속에서 다독거리다보면 어느새 내일을 위한 반성이 된다. 태초의 어둠에서 세상이 태어난 것처럼 나는 밤 속에서 매일 새로운 삶을 꾸려나간다.
비록 밤을 사랑하는 일이 낮과 밤을 만들고 인간에게 잠을 허락해준 신의 뜻에 조금은 어긋나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는 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겠다. 신록을 예찬하고, 청춘을 예찬하고, 잠을 예찬하던 여러 선인들처럼 나는 오늘도 밤을 예찬한다.
- 시험공부하다 "잠시 쉬는 중"일 뿐이라고 자기최면중인 올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