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RVANA를 처음 들은 건 94년의 어느 봄날이었다. MBC라디오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그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헤헤, 이번엔 너바나를 들어보죠. Smells like teen spirits!"
쟝~자쟝, 쟝~쟈가자가~ 로 시작되는 기타 리프에 이어, 드럼이 쏟아져나오는 그 순간부터, 이펙트 먹은 기타소리가 길게 늘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밤10시에 "이승연의 FM데이트"(MBC FM의 FM데이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이승연 다음에 고소영이 하다가 얼마 못가서 박소현으로 교체됐다. 박소현이 진행하던 걸 몇 번 듣다가 FM데이트가 점점 귀간지러운 잡다한 수다방송으로 변질되면서 안듣게 되었다. 아무튼...)에서 '포플러 나무 아래' (이예린)나, '칵테일 사랑'(마로니에) 등등의 노래를 듣곤 했던 내게 "NIRVANA"는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다음날 곧장 레코드 가게에서 [Nevermind] 앨범을 샀다. 벌거벗은 아기가 물 속에서 돈을 잡으려는 포즈의 자켓 앨범은 또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당시 중딩이었던 나에게 신체 중요부위까지 그대로 노출된(!) 앨범자켓 사진은 놀랍기만 했다. 그 날 이후 줄창 듣고, 또 들어서 앨범의 곡 순서는 물론, 가사도 대충 흥얼거릴 무렵,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렸다.
커트 코베인이 자살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날짜로 "식목일"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마저 기억하는데 암튼 그건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유독 그 당시에 자살(또는 의문사)하는 가수가 많았다. 듀스 김성재가 95년 11월에 죽었고, 서지원이 96년 1월에 죽었다. 게다가 양희은 아줌마, 조동익 아저씨와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포크 가수 중에 한 사람이던 김광석마저 96년 1월에 죽었다. 말많은 연예프로그램에선 "가요계, 죽음의 사자가 찾아온 것인가" 등등의 제목으로 숱한 "썰"을 풀어냈고...
어쨌거나 우리나라 가수들이 자살한 일은 코베인 자살 이후의 일이었고, 유명인의 자살을 꽤 심각하게 생각해봤던 건 코베인 때가 처음이었다. 유서 내용이 가관이었다. 한마디로 "너무 유명해져서 감당못하겠으니 죽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질풍 노도의 시기'였던 중딩의 소년에게, 머나먼 이국 땅에 살았던 락밴드 리더의 죽음은 생각보다 쉽게 잊혀졌다.
그러나 고등학교 입학 이후, 온갖 극악무도한 메탈에 심취하는 동안에도 나는 NIRVANA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벗어나기 싫어했다는게 정답일 것이다. Nirvana 때문에, 코베인의 거친 목소리가 부러워서 일부러 목쉰 소리를 내보거나, 기타 소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이펙터니, 앰프니 하는 하드웨어부터 스케일, 코드, 아르페지오, 슬라이드, 피킹 등 각종 이론까지 관심있게 보게 되었고, 드럼 비트에 흥미가 생겨서 당시 유행하던 컴퓨터 작곡 프로그램 '스크림 트랙커'로 비트를 따보기도 하고 (Scream Tracker는 지금 생각해봐도 꽤 명물이었다. 다만 돈없는 고삐리라서 미디 따위는 엄두도 못내고 택했던 프로그램이지만, 자판만으로 만드는 것 치고는 꽤 퀄리티높은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나중에 우리집 푸들, 핑키가 죽었을 때 만들었던 음악도 이걸로 작업했었다. 후후...), 베이스 드럼과 스네어, 탐탐의 차이와 하이햇도 오픈과 클로즈가 있으며 심벌의 종류도 엄청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Nirvana때문이었다. 생전 거들떠 보지도 않던 영어사전을 죽도록 뒤적이게 만든 것도 Nirvana였고, 노래가사는 문법에 맞지 않는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해석해보려고 했던 것도 Nirvana가 처음이었다. 내가 대학1학년 때 "빨간 단발머리"를 해본 것도 코베인 흉내를 낸 것이었다. 금발은 아닌데다가, 코베인의 머리칼이 빨간 색이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AFKN의 Satur-day Night Live"를 알게 된 것도 Nirvana 때문이었다.
Nirvana에서 시작했던 내 음악적 취향의 변화는 한때 Napalm death의 무의미한 그로울링 보컬과 이펙트를 극도로 먹인 기타와 질주하는 드럼으로 가득찬 극악무도한 음악에 이르기도 했다.
해마다 4월 5일이 되면 왠만한 Rock프로그램에서는 Nirvana의 노래 한, 두 곡은 꼭 틀어준다. 커트 코베인은 죽었지만 Nirvana는 내 가슴에, 내 기억에, 내 소중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 한켠에 늘 자리잡고 있다. 그의 카리스마가 너무도 강렬해서 노보셀릭(베이스)이나 그롤(드럼)은 너무 많이 묻혀버린 것이 사실이다. 내게 [Nirvana = 커트 코베인]이란 공식이 세워질 정도였으니.. 얼마 전, 노보셀릭이 "Eyes Adrift"란 밴드로 다시 나왔지만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Nirvana에서 코베인의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오늘 여름옷을 사러 갔다가, 커트 코베인이 그려진 티셔츠를 한 개 샀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나는 충동구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눈 감는 그 날까지, 너바나의 노래가 내 귓가에서 울릴텐데 이깟 티셔츠쯤이야...
#. 커트 코베인의 유서 전문.
(번역이 맘에 안드는 사람은...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봐라! 이건 내가 중딩때 "나우누리" Rock동호회에서 "갈무리"해두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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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oddah
베테랑급 바보라고 말하는것 보다 명확하게 고집이 없는 불평꾼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친다면 여기에 써있는 내용이 이해하기 쉬우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최초에 우리들 공동체의 독립심과 용인을 지지하고 있던, 그래 윤리라고 할까....... 그것에 접해 있던 이래 몇 년에 걸쳐 펑크록 101코스로부터 파생된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만드는 것에 대해 흥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나는 뭘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백스테이지에 있고 쇼를 알리는 표시로 객석의 불이 꺼지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성이 들리기 시작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다. 프레디 머큐리처럼 그것을 사랑하고 관객들이 바치는 애정과 숭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나는 되지 않는다.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가 정말 존경스럽다.움직일수 없는 사실은 여러분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 속이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공정하지 못하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거짓을 통해 마치 내가 100퍼센트 즐기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모두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이다.나는 때때로 무대를 내려오기 전에 시간 기록기를 한방 먹이고 싶은 감상이 들곤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다. 정말 노력하고 있다. 믿어주기 바란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나는 내 자신이 그리고 우리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받고 즐거움을 제공 받았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아마도 잃어버린 순간에 그것의 고마움을 깨닫는 소위 나르시스트 타입인가 보다. 너무 신경이 예민하다. 어린시절에 가지고 있던 정열을 다시 찾기에는 조금은 둔감해 질 필요가 있다.
가장 최근에 치뤘던 3번의 투어 동안에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너바나의 팬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 모두를 예전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안에있는 부담과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선의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단지 단순히 지나치게 사랑했으므로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버렸다. 한심하고 보잘것 없고 연약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물고기 자리의 되게 재수없는 녀석이 된거다.
왜 아무 생각 없이 즐기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나도 더이상 모르겠다. 나에게는 야심과 배려가 넘치는 여신같은 아내와 너무나도 어린시절의 나를 닮은 딸이 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프랜시스는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에게나 키스를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선하고 그녀에게 위험을 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떻게 손쓸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나는 프랜시스가 나처럼 한심하고 자기 파괴적인, 죽음으로 달려가는 일만을 생각하는 인간이 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즐거웠다. 매우 좋은 인생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크게 감사하고 있다. 일곱 살 이후, 인간이라고 하는 것 전부에 대해 증오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너무도 쉽게 타협하고 서로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감! 분명 그것은 단지 내가 너무나도 모두를 사랑하고 미안한 기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몇 년간 편지를 보내주고 염려해 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타서 진무른, 토할 것 같은 뱃 속 바닥에서부터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나는 손 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정상을 벗어난 변덕쟁이 갓난 아기다. 이미 나에게는 정열이 없다. 그리고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 한꺼번에 타버리는 쪽이 훨씬 좋다는 것을...
Peace, Love, Empathy.
Kurt Cobain
프랜시스 그리고 커트니,
나의 모든 것을 그대들에게 바친다.
계속 전진하길 커트니, 프랜시스에게 건배.
내가 없다면 더욱 온화하고 행복해질 그녀의 인생을 위해.
I LOVE YOU,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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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트니 러브는 훗날, 남편 얼굴에 먹칠하는 짓을 몇 가지 했는데 너바나의 사후 앨범을 가지고 타 멤버들과 이러쿵 저러쿵 하는 바람에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 한꺼번에 타버리는 쪽이 훨씬 좋다는 것을..."이란 대목은
종종 내 고딩 시절 연습장에 긁적이는 문구였다.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