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ome computer won't run Doom3. I have lost my will to live."
오늘 저 말이 참 와닿았다. Winamp사이트에 가면 늘 타이틀바에 자신의 문구를 새겨놓곤 하는걸 볼 수 있는데 한동안은 저런 메세지가 나왔었단다. 나 역시 꿈과 희망을 가득 안고 - 물론 최소 요구사항에도 못미치는 내 컴퓨터를 보며 살짝 불안에 떨면서 - Doom3를 설치했다. 결과는... 실행안된다.
내가 처음 Doom을 만난건 중학생 때 였다. 당시 내 컴퓨터는 486DX였는데 하드디스크는 400메가, 메모리는 8메가쯤 되었던걸로 기억한다. 모뎀은 9600bps (당시 통신환경에 대한 회고 : 클릭) 이었고, MS-DOS 5.0인가 6.0으로 부팅하던 때였다. 물론 주로 사용하는 저장매체는 3.5" 플로피 디스크! 용량은 장당 1.4메가 정도. (한때 이거 한장당 용량을 2메가 이상 올려준다는 유틸리티가 PC통신 자료실을 달구기도 했는데 에러가 많아서 그닥 자주 사용하진 않았다.)
당시 웬만한 게임을 한번 하려면 3.5" 디스켓이 여러장 필요했는데 내가 [압축하는 법]과 [푸는 법]을 배우게 된 것도 게임 때문이었다. 드륵~드륵~하면서 적게는 2~3장, 많게는 10장 정도를 압축을 풀어서 하드에 넣어주고, 살포시 실행명령을 내릴 때의 그 쾌감... 그러나 한번에 실행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고, 대개 [memory is not enough] 따위의 에러메세지를 토해내곤 했다. 처음엔 눈물을 머금고 게임하기를 포기했는데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Config파일을 건드려주면 된단다.
오호라! 그리하여 Config.sys와 Autoexec.bat 파일을 건드리는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당시, 우리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었던 게임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동급생]! ^^* 아는 사람은 안다. 이게 무슨 게임인지... 일본 도스를 구하고, 한글 폰트를 구하고, 온갖 마우스 드라이버를 구하고, 공략집을 다운받고, 해도해도 안되면 앨범(!)을 모두 볼 수 있는 파일을 받아서 패치하고... 아무튼 그 게임 덕분에 컴퓨터, 참 많이 연구했었다. 풉..
그러다 Doom을 만나고 말았다. 그렇게 Doom은 지 이름처럼 "운명"으로 내게 다가왔다.
친구에게 받은 열 장이 넘는 플로피디스크를 흐뭇하게 들고 집으로 와서 좌라락 설치! 에러가 없다! 그 때 당시, 가장 큰 낭패는 10장짜리 게임을 압축푸는데 중간에 8장이나 9장째에서 에러가 나버리는 것이다. 안할수도 없고, 할 수도 없고... 난감 100%상황이라 참 신경쓰였는데 내가 Doom을 처음 깔 땐 그런 일조차 없었다! 오!!!
자, 드디어 실행해볼까?
두둥.... [동급생]에 빠져들어 주지육림을 꿈꾸며, [그날이 오면] 시리즈에 열광하며 우주비행사를 동경하던 그 때, [로드러너]의 전설을 기억하며 [레밍즈]를 쓰다듬어 주다가, [인디아나 존스]를 동경하며 [은하영웅전설]을 재현하던 바로 그 때... [Doom]은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음침한 게임 화면.. 1인칭 슈팅, 그것도 3D.. 음산한 사운드와 거침없는 괴물들, 살짝 꼬인 수수께끼같은 미로와 미션들.. 두려워하면서도 끝끝내 플레이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난생 처음 컴퓨터 오락을 오래 하면 멀미가 날 수도 있다는걸 체험하기도 했고...
Doom2가 발표되었을 때, 우린 광분했다. 그 때 당시, 말로만 들어봤던 [네트워크 플레이]를 실현해보게 된 것이다! (Doom 1도 멀티플레이가 가능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해본적은 없다. 그 땐 아직 우리의 내공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당시의 네트워크 플레이는 LPT1, 즉 프린터 케이블(병렬)로 컴퓨터 두 대를 연결해서 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우리는 흥분할 수 밖에 없었다.
오호오옷! 이런 플레이가 가능하다니!
돌아다니다가 괴물을 함께 잡기도 하고, 서로 [잡기 놀이]도 하고.. 암튼 새로운 경험의 장이었다. 물론 Doom2 미션 자체는 그 엄청난 스테이지 (내 기억에 끝판이 40판인가 했던거 같은데.. 20판이었나.. 아무튼 그 때까지 내가 해본 슈팅게임중에 제일 길었다 -_- )에 놀라고, 한층 강화된 괴물들과 묘하게 섬뜩한 게임화면... 더욱 강렬해진 사운드... 밤에 컴퓨터를 켜놓고 둠을 하는데, 코너를 도는 순간 괴물이 튀쳐나올 땐 정말.. 뒤지는 줄 알았다.
그 후로 몇 년...
시간은 컴퓨터 기술을 무수히 변화시켰고, 게임들도 진화(?)해 나갔다. 한때 둠이 윈도용으로 발표된다는 소식에 가슴떨려하던 적도 있었는데 결국 둠2를 윈도에서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이었고, 우리집 컴터 사양으로는 총알 하나 쏘기도 힘든 지경이라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Id 소프트웨어사는 기대에 걸맞게 헤레틱이니, 퀘이크니 하는 게임들을 내놓았고, 비록 우리집에서는 못돌릴망정 (ㅜ_ㅜ) 꼭 한번 이상씩은 플레이를 해보곤 했다. 그래도 Doom의 향수를 떨칠만한 게임은 없다고 생각하며 Doom3의 개발소식에 쌍수를 들고 반겼는데...
[Doom3 최소 사양]
인텔 팬티엄4 1.5GHz 또는 AMD Athlon 1500 384메가 메모리 2기가바이트 하드디스크 용량 지포스 3 또는 라데온 8500 이상
[Doom3 권장 사양]
인텔 팬티엄4 3GHz 또는 AMD 바톤 3000+ 1GB 메모리 2기가바이트 하드디스크 용량 ATI 라데온 6800 또는 X800 GPU기반의 그래픽카드 크리에이티브의 최신 사운드카드 (Audigy 2 ZS) Western Digital Raptor (또는 2 in a RAID setup) 적당한 해상도와 높은 리프레쉬 레이트를 지원하는 19인치 모니터
[내 컴퓨터 사양]
인텔 펜티엄3 700Mhz 메모리 256MB Nvidia TNT2 M64 AC97 지원 사운드카드(메인보드 내장형 -_-) HDD 20기가 (현재 15기가 사용중)
뭡니까, 이게! Id, 나빠요! 흑흑..
물론 설치하기 전에 최소사양을 읽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어쩌면, 만에 하나라도.. 라는 심정으로 무작정 설치부터 하고 봤다.
에러난다.
다이렉트 X 문제인가 싶어, 다시 9.0b 설치. 다시 실행해본다.
에러난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나. 그래, 그래픽 드라이버를 최신으로 업데이트해보는 거야. 업데이트하고 재실행.
에러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나. 온갖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TNT2 M64에서 돌리는데 성공했다는 사례는 없는지 눈 씻고 찾는다.
없다.
그렇다. 우리집 컴퓨터의 사양으로는 도저히 Doom3를 느껴볼 수 없는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PC방을 찾아야겠다. 우리 동네 PC방에 둠이 있으면 좋으련만... 지난번엔 Quake있어요? 했다가 한참동안 그게 뭔지를 설명해줘야만 했는데;;
Doom은 실행할 때 작은 명령어창이 먼저 뜬다는게 제일 먼저 신기했고, 각종 치트키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가령 [동급생]등의 므흣~*한 게임이나 [대항해시대], [삼국지] 등을 할 때 치트키 효과를 얻으려면 (돈 만땅, 체력 만땅, 모든 미션 클리어 등) PCtools로 해당 데이터를 직접 수정하거나 ICE 등의 프로그램으로 메모리를 고정시켜서 그런 효과를 내야했다. 특히나 특정 시점에서 주소 체크 한번, 한마리 죽고 나서 체크 한번 한 다음, 그 변화된 부분을 무한으로 수정하는 방법은 거의 모든 게이머들에게 애용되곤 했다.
아무튼 Doom은 그런 치트키를 입력할 수 있는 게임이었고, 그 종류 또한 다양했다. 벽 뚫기, 아이템 다 채우기, 총알 무제한, 무적 모드, 기타 등등..
해외에서 떠도는 FAQ를 번역해서 게시판에 올리는 사람들도 많았고, 각종 MOD를 지들 맘대로 개조해서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때 Quake에서 드래곤볼 mod가 유행했던걸 기억하시는지... (정확한 이름은 까먹었는데 플레이어들이 드래곤볼 주인공이었다.) 그런 개조를 스스럼없이 자행(!)했던 게임이 Doom이었고, 1인칭 슈팅 게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나는 리니지 같은 RPG게임은 할 수가 없다. 지루하기도 하고, 게임은 말그대로 "즐기기 위해" 하는건데, RPG는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결정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나는 오락실에서 즐기는 [1945 스트라이커]같은게 좋고, 짧고 굵게 끝내는 대전액션도 좋아한다. 혹자는 슈팅게임은 너무 뻔하다라고 평가절하한다. 심지어 Doom마저도 그게 그거 아니냐. 미션끝나면 뭐하러 또하냐. 라는 소리를 내뱉는다.
그러나 오락의 묘미는 "얼마나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느냐"라는 데에 있는거지, "얼마나 예술적이냐"라는 것은 다음 문제이다.
게임은 게임 자체로 흥미를 가질 수 있어야하고, 게다가 둠은 사용자에게 많은 옵션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방법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언제나 [기준]이다.
나는 Doom3를 플레이하지 못해서 억울해 미칠 것 같은 지금 이 순간에, 어느 누군가는 Doom3를 무사히 깔고, 플레이까지 해보구선 "에이, 재미없어"라며 지워버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