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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류장하 / 출연 : 최민식, 윤여정 외 / 128분. 2004.
민식이 형님이 돌아왔다!
추석 연휴 때, 손꼽아 기다리던 이 영화를 봤다. 류장하 감독이 [봄날이 간다]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조감독이었다는 사실은 일단 제쳐두고, 난 그저 우리 "민식이 형님"이 나온다는 사실 하나로 기대에 부풀었다.
[올드보이]를 통해 나는 민식이 형님의 열렬한 팬이 되고 말았다.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부터 살짝 마음에 들더니 [넘버3]와 [쉬리]를 거쳐 [파이란]에 이르는 동안, 점점 더 매력있어지는 최민식... [올드보이]는 그 정점이었던 것이다.
순조로운 출발
[꽃피는 봄이 오면]은 "고집센 노총각 현우의 이야기"이다. 돈 때문에 트럼펫을 불진 않는다는 일념 하나로 사랑하는 연인 연희와도 헤어지게 되었고, 마땅한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한 그는 산골 중학교의 관악부 지도교사로 일하게 된다.
현우의 어머니(윤여정)는 우리 어머니들이 다들 그러하듯, 노총각 아들을 핀잔주면서도 "이제 너는 시작인데 뭘그러니"라며 사랑하는 아들을 다독인다. 현우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곧 봄을 맞이하게 된다.
상영시간 128분은 너무 짧았다
현우가 탄광촌 중학교에서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는 상영시간 128분 동안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현우는 연희와의 어색함도 설명해야하고, 어머니와의 말없는 교감도 설명해야 하고, 친구들과의 마찰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부대낌도 표현해야할 뿐만 아니라, 약사 아가씨와 은근한 로맨스도 보여주면서 그녀의 남자친구와 알력다툼을 해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최민식으로 인해 빚어지는 일들이다.
현우와 연희의 관계를 조금 알만하다 싶으면 친구들과 부대끼는 이유를 알게 되고, 투닥거리던 어머니와 속깊은 정도 나누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용석이와 용석이 아버지의 문제, 용석이와 여자친구와의 다툼을 지켜보는 와중에 재일이와 재일이 할머니의 딱한 사정도 살펴봐야 한다.
결국 128분이라는 시간동안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거의 모든 속사정을 지켜봐야했다.
2% 부족할 때...
[꽃피는 봄이 오면]은 조용한 영화다. 클라이막스나 반전은 물론이거니와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관악 협연 대회도 그 긴장감을 고도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현우의 주변을 살피며 함께 겨울을 보낸다.
[봄날은 간다]와 [8월의 크리스마스] 역시 조용한 영화였다. 류장하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조용하지만 따뜻하고, 평범하지만 울림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그는 너무 욕심을 부린게 아닌가 싶다.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해서 우리 삶의 세밀한 면면을 모두 묘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현우의 주변을 쓰윽 한 번 훑어 주는데 그쳤다면 영화는 더욱 농도 짙은 일상을 보여줄 수 있었으리라.
아쉬운 부분 몇 군데를 꼽자면, 용석이 아버지를 설득시키기 위해 비 오는 날, 갱도 앞에서 협연을 하는 장면과 마지막 결말 부분이다. 비 오는 날의 협연은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이 영화의 본질을 상당히 흐트러뜨린 것 같다. 그 이전까지 영화는 현우가 우리 동네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그 장면에서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 번 상상해보라.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 힘들게 고생하고 나온 아버지들은 추적추적 비를 맞고 나온다. 그들은 하루하루 먹고 사는게 걱정이고 그래서 자식들만은 그런 걱정에서 해방시켜 주고자 한다. 그런데 자식들은 그 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그것도 아버지들은 평소에 듣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이다. 과연 영화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그 분들이 그 음악에 공감하고, 그 소리에 취하고, 자신의 자식들이 대견해서 그렇게 비를 맞으며 음악을 듣고 있었을까.
영화 중에 아이들이 우울한 기분을 떨친다며 유행가를 연주하며 춤추고 놀던 장면이 있다. 오히려 비 오는 날의 협연 장면에서 우리 아버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들려주었더라면, "아버지, 저희는 이런 격조있는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무언의 항변 대신 "아버지, 힘내세요! 저희는 즐겁게 음악을 하겠습니다"라는 애정어린 응원이 더 멋져 보이지 않았을까.
결말 부분은 안그래도 뒷심이 딸리던 영화를 밑으로 확 가라앉혀버렸다. 결국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의 "봄"은 떠난 사랑의 돌아옴에 불과한 것인가. 현우는 연희 때문에 괴로워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약사와 정을 나누는 동안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 무엇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새삼스러워졌을테고...
아무래도 마지막 결말부는 군더더기였다. 우리가 원하는 현우의 "봄"은 그런 싱거운 결말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피는 봄이 오면]은 최민식을 정면에 내세운 영화임에도 너무 많은 에피소드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는 영화였다. 하지만 온갖 격한 영화들이 난무하는 요즘 극장가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따뜻한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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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에피소드들이 나열되면서 너무 뻔한 얘기들도 군데군데 끼어들고 있지만 오랜만에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였다.
생각해보니, 민식이 형님이 [올드보이]에서 지나치게 기를 너무 많이 써서 일부러 이 영화를 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역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야하는 한 사람에 불과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