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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며 부대끼며

조제, 은수, 그리고 연인들...


<봄날은 간다>는 사랑영화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도 사랑영화다.

<봄날은 간다>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항변하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는 사랑은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봄날은 간다>를 보면서 엉엉 우는 사람도 있었고, 하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를 보는 사람은 울지는 않지만 슬프고, 안타깝지만 괴롭지 않으며, 유쾌하지만 신나지는 않을 것이다.

조제(원래 이름은 쿠미코..)와 츠네오는 진심으로 사랑했고, 헤어짐으로 슬퍼하지만 다시 또 그렇게 잘 살아간다. 살아갈 것이다. 은수와 상우도 진심으로 사랑했을테지만 지나치게 빠져들었고, 헤어나오지 못한 채 집착에 빠져 허우적댄다.

털썩, '다이빙하듯' 의자에서 뛰어내리는 조제. 영화 초반,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땐 상당히 뜨악한 장면이었다. 츠네오의 말처럼, '저러다 어디 한 군데 부러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으니...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털썩 뛰어내리고 생선구이를 가져가는 조제의 모습은 힘이 넘쳐 보였다. 몸은 비록 주저앉을지언정 마음은 주저앉지 않는 조제... 상우보다 굳세고, 은수보다 당당하다.

츠네오는 여자가 많다. "생각해서 소용없는 일은 생각하지 않는 스타일"인 그는 말그대로 '본능에 충실'하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영화를 보는 이에게 전해져오고, 그의 변심을 욕할 수가 없게 된다.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될 뿐...

<봄날은 간다>는 나에게 답답하고 거부하고 싶은 영화였다. 상우는 왜 저렇게 집착하는 것인지, 은수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였을지 영화가 끝나도 나는 그 찝찝함을 쉬이 떨쳐내지 못했다.

하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답답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쓴 맛을 알면서도 들이붓는 소주처럼 그렇게 수울술 들어왔다. 하지만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숙취는 없었다. 토악질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속이 쓰리네.. 물 좀 마셔야겠다...'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도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남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상대방을 고문하지도, 스스로 자책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좋았던 날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느냐고 넌지시 물어본다. 그런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냐고.

울고 싶은데 울 수가 없다. 화내고 싶은데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웃음이 터질 것 같은데 대놓고 웃지는 못하겠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렇게 다가왔다. 월요일 아침부터 잔뜩 복잡미묘한 감정을 부추기면서...



+ 조제와 츠네오가 "세상에서 제일 야한 짓"을 벌이던 "물고기 호텔" 장면에서 "오아시스" 생각이 났다. "오아시스"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역시 비교해볼만한 것 같다.

+명대사의 향연이 펼쳐진 영화다. 종종 써먹을 곳이 많을 것 같다. 푸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