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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며 부대끼며

눈물어린 추억의 홈페이지를 찾다

+ 옛 사이트들의 모습을 링크해놓은 것들은 로딩의 압박이 있습니다. 14400bps모뎀으로 인터넷하던 그 때를 기억하며 조금 여유를 부려보세요. 히힛.

내 홈페이지에 마지막으로 올렸던 그림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 종말의 그 날"이 닥쳐올 것이라던 1999년.
"수능날 두고 보자던" 노스트라다무스가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파릇파릇한 꽃미남(!) 새내기가 되어 있었다.

입학식 이후 선배들이나 동기들을 만나면 수첩을 꺼내들고 삐삐번호를 서로 나누던 그 시절(물론 "걸릴 때까지 걸어야하는" 걸리버라든가 "한국 지형에 강한" 본부폰 등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삐삐를 고수했고, 나 이외에도 몇 명의 사람들은 삐삐를 사용했다), 한메일이 다음으로 탈바꿈한지 얼마안되었을 무렵 전국에 인터넷 열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수업 때 조 모임을 한다든가 기타 모임이 있을 때 삐삐번호 대신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고, hanmail.net으로 끝나는 이메일 주소 하나쯤은 당연스레 적어주게 되었을 무렵, 홈페이지 만들기 태풍이 불어왔다.

99년 2학기 때 였는지 00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터넷의 기초와 실습"이라는 과목을 수강했고, 기말과제는 홈페이지 만들기였다. 그전에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곤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야후를 돌아본다거나, 나우누리나 하이텔에서 채팅을 조금 하거나, 게시판을 둘러본다거나 하는게 전부였다. 아! 물론 게임과 므훗~한 것들의 감상도 함께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각종 포털 사이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그 와중에 무료 홈페이지를 제공한다는 곳들도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기말고사 과제도 할 겸, 나도 홈페이지라는걸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오만가지 사이트들을 다 뒤져서 꽤 여러 곳에다 공간을 만둘어 두었었다.

몇 군데를 꼽아보면 Lycos가 잡아먹은Tripod, Dreamwiz네티앙 정도가 기억난다. 여기말고도 꽤 여러 곳에도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곳도 있었는데 (몇 십 메가의 용량, 광고없음, 게다가 FTP와 CGI도 가능하다는 식)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외국 사이트에 좋은데가 많았는데... 아무튼 엄청 많았던 것은 확실하다;

어쨌든 나의 첫 홈페이지는 드림위즈에 만들었고 wo.to로 주소도 간략히 만들어 놓았다. 당시 숱한 개인 홈페이지가 그랬듯이 자기소개, 취미소개, 게시판, 방명록 수준이었고, 뭔가 특별한 공간을 만든다기보다 [나도] 홈페이지를 만들어 본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게다가 학점도 A+을 받았으니 더 바랄게 무엇인가. ^^v

수업은 끝났지만 홈페이지마저 끝내기엔 그간 들인 공이 너무 아까웠다. HTML코드며 게시판 소스(이지보드, 제로보드)며, 방명록 소스(Pury 방명록. 요게 당시에 참 유행했던 방명록이었다. 신의 키스님 스킨이 꽤 인기있었는데 요즘도 쌩쌩 돌아가는 홈피를 보니 왠지 반갑다. ^^; 알고보니 Pury BBS는 태터툴즈 제작하신 분이 만든 것이라더라. 이런건 인연으로 안쳐주나? 흐흐) 등등을 썩히기가 아까웠다.

나름대로 몇 차례의 리뉴얼-리뉴얼이 뭔지도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걸 보고 무작정 나도 리뉴얼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리뉴얼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별다른 내용없이 알음알음으로 입소문을 내서 지인들과의 안부를 묻는 - 요즘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기능 ^^; - 정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00년 가을에서 01년 초봄에 이르러 내 인생 최대의 격변기를 맞았다. 첫사랑과 헤어진 것이다! ㅜ_ㅜ
휴학하고, 삭발하고, 귀뚫고, 물 한 모금 안마시고 침대 위에서 3일 내내 퍼질러자는 등의 만행을 서슴치 않아서 온 식구들이 쓰린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었던 그 때, 내 홈페이지를 새로 구성했다.

그것이 바로 "관.계.생.각"

우연히 80포트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운 좋게 당첨되는 바람에 매우 훌륭한 홈페이지 공간도 생겼다. 용량 무제한이고 광고도 없고, FTP지원되고 PHP, CGI도 지원하는 그 곳. 나에겐 꿈의 공간이었다.

페인트샵프로나 페인터 등등을 이용해서 나름대로 정성껏 메뉴그림도 그리고, 여기저기서 예쁜 그림파일 좀 가져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쓸만한 홈페이지 모양은 한번씩 따라해보면서 [나름대로 야심찬] 나만의 [관계생각]을 꾸려나갔다.


                




(발로 그렸음;;;;;; gif는 어디선가 업어온 그림;;)


내가 입대할 때까지 약 1년도 채 못되는 기간 동안에 운영했던 곳이었지만 간간히 낯모르는 이들도 찾아와주었고, 친구 녀석들이 덕담도 남겨주었기 때문에 꽤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입대로 인해서 오랫동안 관리가 소홀해 진데다 첫사랑 혹은 군대에서 헤어진 여친으로 추정되는 몇 개의 글도 게시판에 올라오곤 했기 때문에 휴가 때 잠깐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었다. 그러다 제대하고 보니, [싸이월드]가 내 앞에 나타나있었다! 이걸 모르면 "복학생 아저씨"라는 소리에 낼름 가입했고, "관계생각"은 그저 내 머리 속의 생각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휴가 나와서 껄쩍대다가 게시판 한 번 날려먹고, 방명록 소스 바꾸다가 두어번 갈아엎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정이 들었기 때문에 폐쇄는 하지 않고, "언젠가는 반드시!"라며 훗날을 기약하고만 있었다. 당시 내 자료를 하드에 백업해놓기도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되돌아보니 사라져있었다. 그러다 "백업해야하는데..."라는 생각만 하기를 몇 달... 군대에서 본 잡지책에 블로그란게 있다는 소리가 기억나서 여차저차해서 80포트 계정에 조그를 설치했다. 요거참 재미지네!라며 블코에도 등록하고, 태터툴즈가 쓰기 편해보여서 블로그툴을 바꿔보기도 했다.

그 재미진 찰나, 어느날 갑자기 눈 앞에 달려든
"404 File Not Found"

울며 겨자먹기로 이글루스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는 찰나, 골빈해커님이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시어 요로코롬 알콩달콩하게 지내게 되었다.

아..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곳에선가 Internet Archive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다. 이름하야 Wayback Machine. 과거를 돌려준다는 그 오묘함에 이끌려 내 기억 속의 인터넷을 하나씩 끄집어 냈다. 물론 나의 "관계생각"도 함께.

꽤 오래전에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글을 쓴다. 어쩌면 나는 그 때까지도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이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문득 그 때가 참 그리워서, 그 때 공들여 썼던, 하지만 지금 읽으면 유치하고 허무하며 씹다뱉은 껌 같은 글들이 아까워서, 볼마우스에 때가 낄 때까지 비벼대며 그렸던 그림들이 아쉬워서 다시 찾았다.

결과는 대만족. 몇 개의 그림이 빠진 것 말고는 거의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게시판의 글도 몇 개를 제외하고는 확인할 수 있어서 참 야릇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그녀들"의 글은 지금봐도 참 가슴시린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나의 "관계생각"을 이 곳에 정리해 두려고 한다. 유치했지만 당시엔 참 치열하고 싶었던, 그저 묻어두기엔 꽤 소중한 내 기억의 한 부분을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금 돌이켜보련다.

아~ 재밌어요, 재밌어~! ^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