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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귀차니스트 스노우캣

요즘 다시 스노우캣의 블로그가 업데이트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노우캣에도 댓글을 달 수 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인 듯 싶다. 내가 처음 스노우캣을 발견(?)했던 그 때만 해도 그 곳에는 게시판이 있었다. 이미 그 때 게시판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아이디가 몇 개 있었고, 나도 "만화 참 재미있어요"라는 식의 상투적인 인사글을 하나 남긴 적도 있었다.

게시판의 조회수가 천단위를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던가. 어느날 게시판은 사라졌고, 이메일만이 유일한 소통수단이었다. 아마 Pet Metheny 팬사이트 링크가 스노우캣 홈페이지에서 사라진 것도 그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노우캣은 방 안에서 뒹굴거리다 엄마에게 혼이 나고, 명절 TV프로그램이 적힌 신문으로 모자를 접어 쓰고, 한 번의 외출로 만사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동선을 계획하는, 그것마저도 내키지 않으면 현관문에서 다시 들어와 침대로 향하는 스노우캣이었다.

그 때의 스노우캣은 내 옆에 살아숨쉬는 친구같았고, 지금은 사라진 싸이미니의 만화보다 더 일상적이고 더 친근한 느낌이었다. 가끔 등장하는 비버를 보면서 친구 녀석과 함께 서로 "너 닮았다"고 웃어대던 그런 때가 있었다.

내가 입대할 즈음이었을까. 스노우캣은 조금씩 내가 기억하던 그 모습과 달라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변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그 녀석은 혼자 놀기를 좋아하고 사색을 즐기며 때론 빈둥거리는데 나는 자꾸만 예전의 모습과 괴리감을 느낀다.

글쎄.. 가장 급진적인 고양이라는 평가에 동조할 수는 없지만 분명 일상적이되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었다. 암수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우리가 발버둥치는 "관계"에서 그 녀석은 초연하다. 그리고 혼자 논다. 우리가 "아.. 난 왜 혼자 놀고 있는걸까."라고 고민하고 있을 때, 스노우캣은 "오늘은 뭘하면서 혼자 놀까" 궁리하고 있었다.

스노우캣은 2000년대 이후로 20대 젊은이 문화의 한 전형이다. 이제 그 귀여운 고양이의 '귀차니즘'을 모르는 20대들은 거의 없으며 때로 녀석의 삶의 방식을 추종한다. 더 이상 스노우캣은 '혼자 놀'지 않는다. 여러 권의 책도 출판되었고, 그의 사이트에 올라오는 게시물은 건당 수만번의 조회수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내 또래들이 "스타벅스"에 열광하고, 예쁜 음식을 눈 앞에 두고 군침 흘리기보다 사진기 셔터를 먼저 누르며, 스타워즈와 레고 등의 작고 아기자기한 모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스노우캣의 영향이 대단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럼 도대체 네가 기억하는 스노우캣은 어떤 모습이었다는 거냐?!!"라고 따져묻는다면 나는 딱히 설명할 수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전에는 "옆에서 같이 뒹굴거리며 TV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친구를 대하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한 발짝 물러서서 "문화생활의 정수"를 맛보고 있는 친구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스노우캣이 돈을 많이 벌어서 그걸 부러워하고 있는 건지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스노우캣의 홈페이지를 들러 그의 일기를 훔쳐본다. 그의 블로그 RSS를 등록해두기도 했다. (지금은 닫아놓은 것 같지만;;) 그 녀석이 뉴욕과 프라하를 쏘다닌다고 한들, 제 버릇 남 못줄 것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스노우캣이 자신의 얼굴이 박힌 스티커를 팔아서 번 돈을 전액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냈던 그 때 그 가슴 따뜻했던 공지사항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