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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며 부대끼며

Blog Fair 2004. 아름다운 행사였다.

지난 금/토 양일간 Next Generation Forum 과 Blog Fair 가 연세대학교에서 열렸다.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은 행사가 있던 그 이틀간, 내가 몸담고 있는 학회에서 시화전을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금요일에 시화전을 참가하고, 토요일 오전에 블로그 페어에 참가한 후, 오후에 과외를 갔다가 저녁 때 시화전 정리를 돕겠다는 것이었으나... 금요일에 선배님들이 많이 오셨고 후배들과 함께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다 토요일 첫 차를 타고 집에 들어오고 말았다.

자, 이쯤되면 포기할 법도 했지만, 덜컥 홍보 트랙백 걸어서 상품도 맡아논 차에 구경조차 못한다면 그 한이 척수에 스며들 듯 하여 과외를 끝내고 무리해서 연세대학교를 찾아갔다.

행사장은 익숙한 곳이었다. 뭐 우리 학교 사람들끼린 "참새대학교"라 부르고, '신촌골'이라 칭하는 곳이지만 새내기때부터 가장 많이 놀러가본 대학교 아니었던가.

새내기 시절, 새벽에 모닥불 피우며 술먹다가 경비 아저씨가 물을 부어버리셨던 학생회관 앞 공터를 지나며 옛 기억을 더듬을 무렵, 행사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시간은 오후 6시를 훌쩍 넘긴지라 땅거미도 상당히 올라온 상황이었다.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라! 뭐 이래!
[전시회]라 하면 삐까뻔쩍한 음악이 터져나오고, 화사하게(!) 차려입은 도우미 언니들을 먼저 떠올렸던 나는 순간 당황했다. 혹시 행사가 다 끝나고 정리하는 것은 아닐까... 그럴만도 했던 것이 누가 행사 진행자인지, 누가 담당자인지는 목에 걸린 'Staff카드'가 아니었다면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내가 너무 늦어서 행사 끝나고 뒷정리중인갑다...'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기왕 왔으니, 상품은 받아가자고 생각하고 (-_-) 입구 쪽 데스크로 갔다.

"저... 여기가 행사 기획 본부인가요?"
"예?"
"저... 음... 이벤트 상품 받으러 왔는데요. 인터넷으로 했던..."

안그래도 식 다 끝나고 온 것 같아서 뻘쭘했는데, 상품받으러 왔다고 말하기가 어찌나 쑥쓰럽던지... 속으로 '저 사람, 나보고 혹시 상품에 눈 먼 사람이라고 하진 않을까'라며 조용히 물어봤다. 어찌나 조용히 물어봤는지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잠시 후, 프린트된 A4 용지를 꺼내더니 내 이름을 찾는다. "올빼미가 보는 세상"이 눈에 띄길래 수줍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컴퓨터용 수성 싸인펜으로 동그라미 한 번 쳐주시곤 예쁜 메모장을 건네주신다.

상품도 상품이었거니와, 두 번 접힌 그 용지에 유독 내 블로그에만 동그라미가 쳐지던 순간,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신청자들 중에 나만 온 것인가. 내가 설마 1등은 아니겠지.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받아갔는데 표시를 안했을 뿐일거야. 등등... 결국 요약하자면 민망했다는 얘기다.

상품을 받아들고, 이 것도 가져가라며 행사 리플릿을 건네주시는 분께 포럼 안내 책자는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PDF파일로 인터넷에 올리실 것이란다. '오호라. 인터넷 축제답군.' 이라 생각하며 슬쩍 부스 쪽으로 가보았다.

이미 끝난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뭐라도 좀 볼 게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뿔싸! 이게 무엇인가!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 내가 본 그 사람들 - 무리지어 서성이며 이야기하던 - 은 행사 진행자도, 기획자도 아니었고, 말그대로 행사 참가자들이었다. 서로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모습을 보고 내가 착각한 것이었다.

무슨 추첨 같은걸 하고 있었는데 몇 몇 사람들은 좋아라하고 아쉽게 탈락한 사람들은 투정을 부리고 있었는데 내 허벅지 우측 상단을 때리는 강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전화를 받아보니 학교 사람이었다.

일단 행사장 밖으로나가 통화를 하는데 이제 곧 정리끝나고 뒷풀이하러 옮긴다는 것이다. 허걱... 뒷정리를 도와주려고 학교가려던 것이었는데 이미 끝났다니 미안해졌다. 더 늦으면 고생한 후배들에게 수고했단 말 한마디 못 건네게 될 것 같아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오늘 오전까지 어제의 숙취 때문에 헤롱거리다 저녁 느즈막히 블로그 페어 이야기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궁금했던 Top30도 찾아보고.

그런데 한편에선 이번 행사에 대해 실망했다는 목소리도 눈에 띄었다. 짧게나마 행사 현장을 직접 방문해본 사람으로써 그런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겠다는 약간의 수긍은 되지만 - 나 역시 처음에는 오해를 할 정도였으니까 - 블로그 특유의 빠른 유통경로를 타고서 자칫 그런 오해들이 기정 사실인양 여겨질까봐 안타깝기 그지 없다.

실망의 목소리를 드높인 분들은 아마 나처럼 기존의 "전시회" 개념을 가지고 이번 행사를 바라본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랬다면 적잖게 실망했을 법 하다. 도대체 행사라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판국인지 몰랐을게 당연하다. 그 곳엔 낭랑한 목소리의 섹시한 도우미도, 번듯하고 화려한 부스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번 행사의 분위기가 블로그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인간미를 오프라인으로 느껴볼 수 있는 행사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추측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내가 직접 참가하지 못한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여유롭게 둘러본 사람들이라면 예전, 이야기 5.3으로 처음 채팅이란걸 해보고, "번개"라는 생소한 용어에 가슴떨레던 그 시절의 동호회 모임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소위 '블로그계'에서 그닥 활발한 소통의 기회를 갖지 않아서 실제 오프라인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는 블로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행사 끝무렵의 그런 화목한 분위기가 내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으니. 추첨 광경과 그 주위 분위기를 살펴보다 문득, '나 같은 블로거는 역시 온라인으로 포스트 몇 개 훑어보는게 편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그 시간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이라면 행사 전반에 걸쳐 꽤 여유로운 나눔의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았고, 그 정도의 시간을 공통의 흥미거리로 공유했다면 나 역시 그 곳에서 한가로이 웃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블로그 축제가 나에게 남겨준 것은 행사 안내문과 이글루의 홍보물(핸드폰줄과 스티커), 다음 블로그 서비스 안내장이 전부이지만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년 행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행사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들은 행사 안내장을 접어서 나눠주지 않고 그대로 나눠줘서 보는 사람들이 불편했다는 것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이쁜 도우미는 왜 없었는지를 한탄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작은 규모의 행사가 오히려 더 정감있었고, 새로운 소통의 매체로 떠오른 블로그를 위한 행사라는 느낌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세세한 문제점이나 불편 사항 등은 '옥의 티'로 생각하고, 앞으로 열릴 블로그 페어에서 개선될 것이라 믿어주면 안될까?

블로그 페어가 더 좋은 모습을 갖추고, 블로거들의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주최측의 노력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실제로'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내년 이맘 때, 나는 졸업을 앞두고 남은 여생을 어찌 살 것인지를 고민하며 머리띠 두르고 피터지게 생활하고 있겠지만, 제2회 블로그 페어 2005 만큼은 꼭 제대로 구경하고 말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