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2004년 11월 29일 오전 9시. 또 한 분의 시인이 돌아가셨다.
내가 처음 이 시를 읽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때로는 연애시로 아리따운 그녀에게 보내는 연서 속에 베껴쓰기도 했고, 때로는 사춘기 시절 일기장에 한 구절 적어놓고 오랫동안 바라보기도 했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나는 무엇을 쓰고 있나. 그는 우리들에게 꽃으로 기억되고 꽃으로 불리우는데 내가 죽으면 무엇으로 기억될까.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것. 요즘 내 삶의 화두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