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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며 부대끼며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는게 아니라니깐! 버럭!

오늘 아주 흥미로운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지구는 태양을 돌지 않는다] (via http://www.dongbum.com)

우리는 이제까지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배웠고, 그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근거들을 배워왔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신 어느 선각자분께서 이런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하시고 계신다! 오호라!

가서 보면 알겠지만 당연히 저 사이트에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저 선각자분의 너무나도 강력하고 단호한 주장이 실려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몇 가지 간략한 자료도 제시되어 있고, 질문 게시판도 마련해 놓으셔서 미천한 우리 학생들이 어서 이 엄청난 사실을 깨달아 인류 발전에 이바지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신다. (게시판 글을 몇 개만 읽어보시라. 이 분은 정말 "진심으로" 바라고 계신다.)

처음 저 사이트를 방문했을 때는 "오호~ 뭔가 그럴싸한 증거라도 찾은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몇 년 전, 온 인터넷을 휘저었던 "미국이 달에 갔다는 것은 뻥이다!"라는 주장처럼.

하지만 막상 사이트를 둘러보고나니 자뭇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 분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오히려 맞춤법을 지나치게 틀리시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은 곤란마저 겪고 계신다.

이쯤되면 지구가 태양을 도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이미 문제가 아니다. 저 분은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신 분이 아니다. 지난 수십년간을 오로지 이 문제 때문에 고민하시고, 신문광고까지 내셨다고 하시는 분인데, 그깟 오해와 편견은 살포시 무시하시고도 남는다.

왜 저 분은 저런 사이트를 만들게 되었을까.

한참동안 게시판을 읽다가 문득, 이 분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의 신념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강한 확신에 차있다는 의미인지... 스스로 초등학교만 졸업했다고 밝히실 만큼 솔직한 이 분은 비록 맞춤법도 틀리고,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정확한 과학적 근거도 잘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의 신념을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 분은 우리와 함께 살기에는 지나치게 순진하신 분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게시판에서는 이 주장이 왜 틀렸는지를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가며 이 분에게 항의하거나 이 분을 설득시키려는 글들이 꽤 많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분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글들이 아니라 그저 흥미롭게 그의 주장을 들어주는 태도 아닐까.

굳이 과학적 근거를 찾지 않아도 그의 주장이 거짓임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이 참이라 믿고 있고, 지난 수십년간 절대로 그 믿음을 깨뜨리지 않았다. 급기야 홈페이지까지 개설했지 않은가.

우리는 단지 인터넷의 수많은 글들 중에서 매우 독특하고 강력한 한 개인의 의사표명을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그의 글이 맞춤법이 틀렸다고 그를 무시하는 것도, 그 분의 주장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고 그를 고치려 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미 그 분은 연세도 지긋한 어른이 되신 듯 하다. 어느 특이한 어르신이 하도 답답해서 인터넷에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치고 싶었던 것으로 봐드리면 안될까.

저 홈페이지를 나오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저 곳이 곧 온 인터넷에 회자되면서 온갖 악플이 난무하여 저 분이 꽤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저 조용히 지켜보자.
세상은 가끔 저런 분도 계셔야 살 만 한 곳 아니었던가.


+추가) 오... 그 분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이 웹페이지를 통해 이 놀라운 주장을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 주장을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웹에서 공개하면 나쁜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연구결과인 척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호라! 조만간 이 분께 발표 자리 만들어드리자는 운동이 생길 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