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말. 한 때 난 꿈꾸는 걸 포기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심지어는 성공이 두려워서.
네가 꿈을 버리지 않는 아이인 걸 알았을 때,
나 또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지.
계절은 별한다. 인생의 겨울에 와서야 삶을 알게 되었구나.
네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 거다.
- 윌리엄 포레스터의 마지막 편지
학교에서 "파인딩 포레스터"를 봤다. 새로 생긴 수백억짜리 건물은 곳곳에서 돈을 바른 흔적이 드러나는데 DVD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널찍하게 자리잡고 있다. 학회실이 사라지고, 우리들의 공간이 하나씩 점령당하는 사이, 실력좋은 총장님께서 끌어모으신 돈과 우리의 피같은 돈으로 이런 장소들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기왕 만들어진 곳, 본전은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이제 공강시간이나 점심먹고 나른할 때면 이 곳에서 자주 놀아봐야겠더라.
딴소리가 길었는데 "파인딩 포레스터"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굿 윌 헌팅"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이 만든 영화라 그런지 두 영화는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아를 찾아가는 청년과 그를 이끌어주는 어른.
내가 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건 평소 문학 - 특히 소설 - 에 관심이 많아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실제 문학반 활동을 하면서 만나본 소설가들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평론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불만이 있었고, 작가와 평론가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듣곤 했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고, 문학 작품은 독자들에 의해서 재해석되면서 의미를 가진다고 하지만 평론가는 단순한 독자가 아니면서 작품을 해석해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와의 괴리가 생겨나는 것 아닌가.
지멀과 포레스터의 인간적 교류와 그로 인한 둘의 성장과 변화는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이지만 "굿 윌 헌팅"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지라 그보다는 "문학과 작가를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점 때문에 훨씬 매력을 느꼈다.
다만 포레스터가 쓴 글을 보여주지 않고, 심지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에서조차 포레스터는 지멀의 글을 완전히 낭독하지 않는다. 허허..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아닐까 싶다.
+ 헐. 구스 반 산트가 동성애적 성향이 있다는 소리에 적잖게 놀랬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굿 윌 헌팅"과 "파인딩 포레스터"와 같은 방식이 아니겠냐는 말에 뜨아해하면서도 아귀가 맞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