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방법은 "우뢰매나 슈퍼홍길동을 영화관에서 보고,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는 장면에서 박수를 쳐 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한 방법임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ET가 시작되기 전, 대한뉘우-스를 본 후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역시 공감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
+ 추가: "영화관에서는 소근거리는 소리도 방해되니 아예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글을 보지 마세요. 굉장히 불편한 글이 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나는 영화관에 "떠들기 위해서" 간다. 그래서 나는 뭇사람들이 싫어라하는 "초딩의 습격"조차 기꺼운 마음으로 즐기곤 한다. (실제로 "킹콩"을 보러 갔을 때, 나와 내 후배는 초딩과 유아들로부터 둘러싸인 채 관람했다.)
홈씨어터니, DVD방이니 하는 것들이 일반화된 요즘 세상에 영화 한 편 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그 넓직한 화면과 가슴을 때리는 묵직한 사운드를 만끽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나는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타인과의 교감 혹은 이질감"을 생생히 즐기기 위해서 그 곳을 찾는다.
1. "너, 제발 좀 영화볼 때 닥치고 있어."
2. "덕분에 진짜 재밌게 봤다. 흐흐흐."
나는 초딩들의 재잘거림을 못견뎌하는 사람들에겐 영화관에서 "악의 꽃"과 같은 존재다. 나는 타이틀 화면이 등장함과 동시에 입을 열기 시작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입을 닫는다. 물론 "뭐 저렇게 생긴 녀석이 다 있어."라든가 "에이, 재미없어(혹은 우와, 짱멋있다)" 등등의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조금이라도 웃긴 장면이 나오면 (혹은 그닥 나의 유머감각에 어울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감독이 의도한 장면이라면) 마음껏 웃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찔끔거린다. 주인공이 싸가지 없으면 냅다 "저런 나쁜 자식!"이라고 비난 섞인 한 마디를 던지거나, 불쌍한 여주인공이 가슴아파하면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어허..."라며 한숨을 던진다.
뭐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영화를 볼 이유도 없고,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영화감상을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래서 "절름발이가 범인이닷!"이라고 소리친다거나, 팝콘과 콜라를 쩝쩝, 후루룩 먹는다거나, 발로 앞사람을 툭툭 친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다만 나직이 소리죽여 영화를 즐긴다. 그마저도 눈치봐가면서 살살.
나는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보고, 함께 느낀다는게 즐겁다. 킹콩을 볼 때, “어머 어떻게해~”라고 한탄을 내뱉던 어떤 여성 관객은 없었지만 "엄마, 킹콩이 나쁜 놈이야? 근데 왜 저 여자는 좋아해?"라는 옆자리 꼬마 녀석에게 "킹콩, 나쁜 애 아니야."라고 속삭여줄 수는 있었다. 주성치의 소림축구와 쿵푸허슬을 극장에서 봤을 때, 이런 즐거움은 한층 배가 되곤 했다. "크크, 저 장면 XX에 나왔던 거 아냐. 미쳐미쳐 >.<"라는 어느 관객의 도움말에 옆에 있던 다른 관객들이 덩달아 웃을 수 있었다.
나의 이런 나쁜(?!) 감상법은 우리 어무이의 드라마 감상법으로부터 전수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울어무이, 드라마 감정이입의 도사이시며 대사부터 캐릭터 성격에 이르기까지 냉철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그것도 드라마를 보면서 동시에.) 하지만 나는 집에서 혼자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것보다 그 넓은 영화관에서 나와 같은 생각,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확인하는게 훨씬 즐겁다. 군중심리일까? 어쨌든 남들과 함께 웃으면 별로 재미없는 영화도 괜히 더 재미있어 보이고, 남들과 함께 울면 별 것 아닌 통속영화도 가슴시린 영화가 되는건 사실아닌가.
에스퍼맨이 데일리와 힘을 합쳐 루카를 무찌를 때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킹콩이 티라노사우르스의 턱뼈를 으스러뜨릴 때, 박수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꽤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후배 녀석의 만류가 아니었다면 박수를 칠 뻔 했다;)
앞으로도 나는 영화관에서 나름대로 즐겁게(!) 영화를 볼란다. 떠드는 초딩이 옆자리에 앉으면 귓속말로 "꼬마야, 조금만 조용히 하면 형아가 재밌는거 설명해줄께. 자, 저기 봐봐. 좀만 있으면 멋있는 애들 나올거야."라고 거들어 주고 싶다. 단,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 추가 : mithrandir님이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좋아요” 클럽을 결성하셨다(!) ^^ 현재 lunamoth님과 아르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데 추세로 보아, "폭발적인 호응"을 얻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으히히히! 영화관 만세!
+ 추가 : 이 글을 보고 기뻐하며 즐거운 환호를 달아주신 분들이라면 젯털님의 글과 리디님의 글을 참고하시라. 우리가 기쁨에 넘쳐 환호하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은 그 누군가는 우리를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김영감님이 가장 중요한 점을 지적해주셨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