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며, 그들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실습을 나가게 될 나의 모교는 땀냄새 풀풀 풍기며, 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시커먼 녀석들이 모인 고등학교이다. 이들은 7차 교육과정에 따라 10학년(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국민 공통 기본 교육 과정에 따라, [고등학교 국어 (상), (하)]를 배우고, 11학년(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선택 교육 과정에 따라 [국어생활](일반 선택 과목)과 [문학], [작문], [화법], [독서], [문법](심화 선택 과목)을 배우고, 12학년(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심화 선택 과목만을 배우게 된다. 일반 선택은 2학년에 배우긴 하지만 심화 선택 과목의 선수 과목은 아니다. 즉, 국어생활을 학습하지 않은 학생이 기타 심화 선택 과목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부분을 익히는데 나는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나는 6차 교육과정에 따라 학습했던 세대이기 때문에 내가 떠올리는 학교 수업이란 6차 교육과정에 맞는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동생(현재 고등학교 3학년)의 수업 시간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방학 중 재량활동이라는 것의 존재에 대해 놀라워했으며, 엄청나게 다양한 교과목들을 보고 "애들을 완전히 잡는구나... 저걸 어떻게 다 배우냐..."라는 말을 던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어 수업 역시 이러한 큰 틀 속에서 "학습자 중심의 교육 과정", "심화 보충형 수준별 교육 과정"으로 구성되었다. 눈여겨봐야할 부분은 각 영역의 교육 내용을 ‘본질’, ‘원리’, ‘태도’, ‘실제’의 네 범주로 구분하여 제시했다는 점이다. 특히 "태도" 범주의 경우, 7차 교육과정에서 새로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수동적 교수-학습에서 탈피하여 학습자의 활동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교수-학습 활동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즉, 학습자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을 존중하여 그에 맞는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 7차 교육과정의 밑바탕에 흐르는 주된 개념인 것이다.
국어 수업 역시 이제는 보다 학생들의 입장을 생각해야할 때가 왔다. "절대적인 지식은 없다. 지식은 학습자 스스로 재구성하는 것"이라는 구성주의적 입장이 반영된 결과인 듯 하다. 이는 교사의 역할이 "구체적이고 명백한 지식의 전달자"에서 "다양하고 실제적인 정보들을 제공하고, 학생 개개인의 이해를 돕는 조력자"로 변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제는 문학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주제와 소재를 찾아주고, 단락을 나누고, 사용된 수사법을 알려주며, 밑줄 친 부분의 의미와 그 상관관계를 해설해주는 식의 교육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과 "함께" 찾아나가되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설혹 엉뚱한 곳으로 가는 학생이 있더라도 그들을 억지로 나의 틀 속에 가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구구절절히 달라진 교육과 그에 대한 장미빛 희망을 조심스레 얘기해보지만, 여전히 내 동생(아까 말했듯이 고3 수험생;;)은 입시를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내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고등학교 교실의 수업 분위기는 살벌할 정도로 변해버린 학교도 있다고 한다. 내가 1등급을 받으려면 내 친구는 2등급을 받아야하는 세상, 교실이데아의 한 대목("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이 오늘날의 교실에서도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은 서글프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가진다. 아무리 ㅇㅎㅊ 같은 사람들이 온갖 화려한 연속기로 학생들에게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지라도, 수능 부정이니 교사 비리니 일진회니 하는 온갖 잡배들의 분탕질이 난무하는 곳이라 할지라도, 학교 현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그들을 향해 필살기를 먹일 수 있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남아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약 1주일 정도의 수업만을 하게 되겠지만, 나는 그 1주일의 시간을 통해 그 가능성을 점쳐보고 싶다. 내가 국어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그 즐거움, 내가 국문과를 택할 정도로 나를 매혹시켰던 국어의 매력을 보다 많은 학생들이 눈치챘으면 하는 거창한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