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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아부지는 얼리어답터

우리 아부지는 얼리어답터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이전부터 "새로운 기계"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신 분이셨다. 유치원생이던 나에게 APPLE ][로 로드러너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분이셨고,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당시 TV에서 한창 잘 나가던 조립식 - 우리는 그걸 조립식이라고 불렀다. 정확한 명칭이 '프라모델'이었다는 것은 훨씬 자란 다음에야 알았다 - "에어울프"를 사주셨던 분이다.

내가 노트북이란걸 실물로 직접 보게 된 것도 우리 아부지가 장만하셨던 386급 노트북이었다. 286급이었는지도 모를 그 노트북으로 나는 처음 한글워드프로세서라는걸 사용해봤고, 도스 명령어 몇 개도 끄적여 봤다.

컴퓨터는 늘 아부지의 첫 번째 관심사였고, 내가 아직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 컴퓨터는 항상 최신 사양을 갖추고 있었으며 부정기적이지만 획기적인 업그레이드를 하곤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컴퓨터 역시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아부지께서 최고 사양으로 맞춰놓으셨던 컴퓨터다. 전역한 나는 낼롬 이 것을 받아쓰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안성기가 기차 위에서 죽어라 "본부! 본부!"를 외치던 그 핸드폰을 덥썩 장만하시곤 "이거 음성인식도 된다, 임마! 죽이지?!"라던 아부지. 내가 대학 2학년이 되었을 즈음 처음 등장한 30만화소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으로 바꾸셨다. "이거 사진도 찍혀, 임마! 죽이지?!"라고 하시던 아부지는 요즘 "DMB, 그거 뭐 볼거 있겠나?"라며 잠시 주춤하고 계신다.

내가 훈련소에 있을 때,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내준 사람은 내 애인도 아니고, 내 친구도 아니고, 울엄마도 아니고, 울아부지였다. 아부지는 때로는 손으로 쓰신, 때로는 프린터로 출력한 편지를 보내셨고, 거의 매번 빠짐없이 A4에 사진을 인쇄해서 보내시곤 하셨다. "포토샵이니 뭐니 하는거 조금씩 해보는 중인데 생각보다 어렵구나야. 너 휴가나오면 좀 가르쳐주라" 등등의 내용도 있었다.

막상 내가 휴가를 나갔을 때, 아부지는 사진편집에, 동영상 편집까지 하시고, CD로 굽거나 DVD 타이틀을 만들어내실 정도였다. 그리곤 어느새 차 안에 달아놓으신 네비게이터로 그것들을 보여주시며 자랑하셨다. 내가 따라부르기엔 벅찬, 꽤나 오래된 노래들을 MP3 CD로 틀어주시겠다며 그 바쁜 운전 중에도 리모콘 조작을 하신다.

잉크젯 프린터와 레이저 프린터를 처음 구경한 것도 우리집 안방이었고, DDR이 한창 뜨고 있을 무렵, 느닷없이 내 방에 컴퓨터에 연결시킬수 있는 DDR 발판을 던져두고 가신 분도 아부지셨다.

덜컥 사버렸던 디지털8미리 캠코더를 컴퓨터랑 연결하신다고 IEEE 1394 카드를 사시더니, 1Gb짜리 마이크로 드라이브를 옵션으로 선택하시곤 200만 화소 디카를 주문하셨다. 아부지가 사신 그 디카는 온식구들이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당시만 해도 200만 화소라고 하면 내 친구들이 "와~!"하던 때였다. 거기다 1기가바이트라고 하면 다들 감격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아부지가 오늘 저녁, 나를 한 번 더 놀래키셨다.
"느그 아부지, 오늘 또 뭐 샀나 봐라"라던 어무이의 귀뜸이 없었다면 나는 아부지가 "PMP"를 가지고 계시다는걸 까맣게 모를뻔했다.

"우와앗!~ 아부지, 이걸로 영화도 보고! 노래도 듣고! 오옷~!"
"야야, 이거는 이제 사양길로 접어드는 모델이래. 나야뭐 전자책 볼라고 산거야. 성서파일 txt로 된 거 좀 찾아봐라. 가톨릭용으로."

그래도 울아부지, 예의 그 자랑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으신다.
"야, 임마. - 꼭 자랑하실 때는 한 톤을 낮춘 목소리로 '임마'라고 부르심 - 이제 여기다 디카 바로 연결해서 사진도 바로 확인하고, 얼마든지 사진을 더 찍을 수 있다구. 이거 20기가니까 차고도 넘치지."

그랬다. 이번에도 아부지는 나보다 한 발 앞서나가셨다. 나는 언제나 늘 아버지보다 한걸음 뒤에서 아버지가 써보신 물건들을 감상하고, 평가하면서, 이런저런 재미를 맛보곤 했다.

하지만 매달 카드 통지서가 배달될 때마다 투덜거리시는 어무이께서 모르시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아부지는 그 모든 기계를 나 때문에 사신다는걸.

나는 이제껏 살면서 부모님께 뭐 사달라고 당당히 요구해본 적이 없다. "순하고 착한" 아이였기 때문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그런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게 있어도 "괜찮아요", 갖고 싶은게 있어도 "괜찮아요"... 그러다보니 정작 내가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내가 무언가 요구해야하는 상황일 때 그것을 요구하는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어쨌든 그 땐 그랬다.

아부지는 나에게 "시대의 흐름"을 가르쳐 주려고 하셨고, 지금도 그렇다. 예전에는 "이런 게 요즘 있단다"라는 분위기였다면, 요즘은 우리 세대와 소통하는 방식을 직접 체험하시려는 분위기다.

나는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장난감 같은걸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 울아부지랑 로드러너하는게 더 재밌었고, 그렇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은 채 한참 지나고나면 아부지가 다른 무언가를 들고 오셨다. 물론 나에게 주신 것도 있고, 아부지가 쓰시려고 산 것도 있지만 어쨌든 나 역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예전에 DDR 발판을 던지시던 아부지의 모습과 오늘 PMP 사용법을 익히시느라 땀흘리시는 아부지의 모습 사이에서 나는 잔잔한 세월의 흐름을 본다.

아들 녀석들과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시는 아부지를 보면서, 훌쩍 자라버린 나는 그 동안 아부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돌아본다.

외출하신 아부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펌웨어 업그레이드도 하고, TXT파일 찾은 것도 넣어드려야 겠다. 그리고 요즘 열심히 연습하시는 대금 연주도 들려달라고 해야겠다. "우와, 아부지, 진짜 많이 느셨어요. 소리 멋지다! 와!" 정도의 멘트는 진심으로 날려야지.

비가 오는데 춥지 않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