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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여고생이 읽지 말아야할 소설

며칠전 야간자율학습(정확히는 "자기주도학습" ㅡ_ㅡ;) 지도교사로 남아있을 때의 일이다. (자율학습을 [감독]한다는 말도 우습지만 [지도]라는 것도 꼴사납다. 어쨌든 아이들이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역할을 말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전교생이 밤10시까지 야자를 하는데 1,2학년에서 전교1등부터 30등까지는 "특별관리"를 하고 있다. 별도의 공간에서 야자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곳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반에서의 석차로 뽑은 것도 아니고 전교 석차로 아이들을 걸러냈으니 야자시간에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만큼 조용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쉬는 시간에도 꼼짝않고 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도 있다. 나는 내가 먼저 숨이 막히거니와 녀석들도 좀 답답하지 않을까 싶어 가끔 일어나서 무슨 공부하는지 슬며시 들여다보기도 하고 간혹 책을 읽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살짝 표지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랬다가 "신경쓰인다"는 어느 학생의 항의 아닌 항의 소리를 듣고 그마저도 하지 않았지만;;)

쉬는 시간, 몇 몇의 아이들이 나와 이런 저런 잡담을 하고 있었다. 보통 여학생들은 남자 선생님에게, 남학생들은 여자 선생님에게 말을 잘 거는 편인데 어쨌거나 나는 곱디고운 여고생들에게 둘러싸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언어영역 이야기를 할 때였던가.. 누군가 "공지영"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한 아이에게 "봉순이 언니"를 읽어보았느냐고 물었다. [고등어]가 아닌 [봉순이 언니]를 물어본 이유는 언젠가 그 책이 MBC 느낌표 선정도서였다는 사실을 기억했고, 아무리 책을 안읽는 아이들이라도 느낌표에 나왔던 책은 이름이라도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답이 걸작이었다.

"어? 그 책, 우리 엄마가 읽지 말랬어요."

적잖게 당황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이유는 모르겠단다. 그 아이는 수업 시간에 언제나 허리를 세우고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은, 발표에도 능숙하고 아이들에게도 있기있는 예쁜 반장이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왜 봉순이 언니를 "금서"로 취급한 것일까.

같은 반 아이 중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학생이 한 명 있다. 그 아이 역시 맨 앞자리에서 절대로 졸지 않으며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하나하나 귀기울이는 학생이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만 알았던 그 학생은 언제나 확실한 답을 원한다. 그러나 어디 "문학"이 확실한 과목이던가. 그래서 녀석은 늘 질문을 많이 한다. 무엇보다 날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그 학생은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스스로 완벽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인간적인 실수에도 그 아이는 혼자서 굉장히 마음아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한 마디 말을 보탠다면 더 크게 신경을 쓸 것 같아서 짐짓 모른척 하고 말았다.

조선일보를 열심히 구독하며 왜 북한이 우리의 주적인지를 옹호하는 논지를 펼치는 토론회(사실 토론회라기보다 일방적인 전달에 가까워보였지만)에도 참석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녀석은 내게 "선생님은 어떤 신문 보세요?"라고 하더니 내가 미쳐 대답하기도 전에 스스로 평을 내린다. "한겨례는 너무 정부편만 드는 것 같아요. 조선일보는 비판적인 것 같은데." 그 아이는 며칠 뒤, 내게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 독서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며 자랑을 했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나는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문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건 우리의 삶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르친다는 말도 우습다. 문학 자체를 가르친다고 해서 무엇하겠나. 문학을 통해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 아닐까. 문학이란 우리가 조금 더 넉넉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임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비단 몇 몇의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한 달 남짓 고등학교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고, 들어보고, 생각해보니 결국 문제는 어른들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수업에 대한 압박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어른"임과 동시에 "선생님"이 아닌가. 올바른 것을 가르치고 있는지,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는지 점점 걱정이 커져만 가고 있다.

내일 수업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읽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