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구백구십팔년. 나는 이 땅의 [고삼]이었다. 매달 모의고사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온 몸의 땀구멍이 졸아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했던 고삼, 아침 7시까지 학교에 가서 밤9시가 훌쩍 넘어서야 집에 돌아와야했던 고삼.
그런 고삼에게 메탈리카 내한 공연에 가서 신나게 몸을 흔들어댈 용기는 없었다. 더군다나 메탈리카가 온다던 그 날은 모의고사 바로 전 날. 그 때만 해도 나는 소심했다.
그 해 늦가을, 메가데스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 수능만 끝나고 와라. 내 기꺼이 온 몸 바쳐 흔들어주마!"라고 다짐한 다음날, 수능 전날 공연이라더라. 후유증이 없을 수가 없는 공연인지라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이천일년, 입대를 앞둔 나는 판테라의 내한 공연 소식을 들었다. 두말할 필요없이 예매했다. 올림픽 테니스 경기장에서 3시간 여 동안 온 몸을 흔들었다. 미치고 팔짝 뛰어댔다. 다음날.. 몸살이 났다.
그리고 이제 이천육년. 다시 그들이 온단다. 메탈리카, 그들이 온단다. Led Zepplin을 처음 듣던 그 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Metallica는 Master of puppets과 One으로 내 심장을 후려쳤다. 고삼 때, 결국 나는 그들의 3집, 4집, 5집, 6집 테이프를 모조리 늘어뜨려 버렸다. 학교갈 때 듣고, 쉬는 시간에 듣고, 점심시간에 듣고, 저녁먹을 때 듣고, 야자시간에 몰래 듣고, 집에 갈 때 듣고, 잠자면서 들었더니 그렇게 되더라.
그 맘 때의 남학생들이라면 한 번쯤 그렇듯이 그들의 노래 가사를 적어놓고 사전 뒤적여가며 이리저리 해석해보던 기억이 난다. 사랑타령이 아니라서 좋았고, "나"에 대한 이야기라서 좋았다. 모의고사 성적표를 들고서 Nothing else matters..Nothing else matters..라 중얼거렸다.
곰곰히 따져보니 사랑 때문에 아파하며 지쳐있을 때도 나는 메탈리카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 동네 공원에서 그녀를 기다리다 지쳐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메탈리카를 듣고 있었다. Lars의 Tom 소리에 내 심장박동을 맞추며 미친듯이 달렸다. 눈물이 흐를 때쯤 James의 거친 목소리가 등짝을 후려치고 있었다. Kirk의 솔로를 들으며 연신 눈물을 훔쳤던 그 때.
오늘 오전에 인터넷을 좀 돌아다니다 이 벼락같은 소식을 발견하고는 바로 예매버튼을 눌렀다. 내친 김에 옆에 있던 동생 표까지 함께. 엄청난 돈을 한 큐에 눌러버리는 바람에 나는 물론이거니와 동생마저 "혀,형.. 괘,괜찮겠어?"라며 놀랄 정도였지만 형제는 용감했다. 우리는 이내 한 목소리로 그들의 히트곡을 부르고 있었다.
그들이 온다. 이천육년 팔월 십오일. 수십년전 우리 나라가 해방되던 그 날, 그들이 온다. 수능에 얽매여 있던 나는 올해에 비로소 그들과 함께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겠구나.
내일 학교에서 애들한테 자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