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수행 평가로 아이들은 독후감상문을 썼다. 학교 선정 도서 100권 중에서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서 내용과 감상, 그리고 자신의 체험을 적절히 썼는지의 여부가 채점 기준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참 좋은 감상문을 써냈다. 감상문을 쓰기 전에 "체험"의 중요성에 대해서 내가 강조를 하긴 했지만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과 실생활에서의 경험을 잘 엮어낸 아이들이 많다.
그런데 몇 명의 아이들은 A4 한 장 분량의 독후감상문을 쓰기 위해서 컨닝페이퍼를 만들었다. 수업 시간 중에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이 되긴 했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은 "완벽한 감상문"을 만들어도 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그랬던 것이리라.
컨닝 페이퍼의 대부분은 내가 감상문을 쓰기 전에 압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채점 과정에서 2명의 학생이 좋지 않은 답안을 냈다. 소위 "완벽한 답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료를 적당히 짜집기해서 써낸 것이다.
내일 해당 학생을 따로 불러서 자세히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 학생들은 최하점을 피하긴 어렵다. 모든 선생님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해 답안을 작성했다면 조금 말투가 어눌하고 맞춤법이 틀리고 표현이 어색하더라도 만점을 줄 것이다. (실제로 엄청난 악필에 초등학생의 말투로 쓴 답안지도 있었지만 자신이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작성한 답안은 만점을 주었다.)
방금 우리 나라와 토고의 월드컵 경기를 봤다. 이겼다. 기쁘다. 같이 보던 식구들과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고, 아부지와 동생과 함께 맥주잔을 높이 들며 건배를 외쳤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승리가 눈 앞에 보일 무렵, 우리 선수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계속 공을 돌리는 그들을 보면서 해설자들은 "이기기 위해선 저런 것도 필요하다"라고 말했지만 글쎄.. 이기는 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간만에 온 식구들이 오손도손 모여 즐겁게 운동경기를 관람했다. 그런데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썩 개운치가 않다. 나는 축구에는 문외한인지라 선수들이 어떻고, 상대편이 어떻고, 전술이니 전략이니 포매이션이니 하는 것들은 잘 모른다. 그저 재미난 축구 경기 한 편 본다는 생각이었고,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보면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들이켰을 뿐이다. 날씨도 많이 더운 것 같았고 그 넓은 운동장에서 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뛰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긴장되는 일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내일 학교에서 녀석들에게 "야! 우리 나라 진짜 멋있었어!"라고 말하기엔 2% 부족한 것 같다. 어쩌면 녀석들도 "어쨌든 이겼잖아요 ㅡ_ㅡ"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내일은 비록 녀석들에게 뒷담을 무지하게 얻어먹을지언정 우리가 세상을 사는 건 "이기기 위해서" 사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수행평가 점수 따위보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더 소중한 것임을...
내일 수업, 큰 일 났다. OTL...
학교종이 땡땡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