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곡표(setlist)는 여기에서 확인하시고, 가늘고 긴 감상 후기 남겨봅니다.
고3 동생 데리고;; 오후 1시 반쯤 잠실에 도착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데다 오전부터 집에 있으려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못참겠더군요. 음료수 한 잔 마시고 공연 전 먹을 햄버거 사들고 공연장으로 갔습니다. 아무도 없더군요. 허허;; 잠시 소나기를 피하면서 동생과 "이러다 공연취소되면 어쩌나..." 걱정도 했습니다만 다행히 금방 개었습니다. 물품보관소에서 보관증을 받았는데 넘버가 [4]. 네, 우리가 너무 일찍 가긴 했어요;;;;
5시쯤 입장시작했습니다. 저희 앞줄에는 귀엽게 생긴 미군애들 2명, 뒤에는 예쁘장한 커플과 여고생 한 명이 있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미군애들이랑 간단히 농담 따먹기 한 번 해주고, 뒤에 있던 여고생에게 말을 걸려다 참았습니다. 고딩만 보면 말걸고 싶어지는 것도 직업병이려나요? 저희 학교에 저랑 같이 공연 올 학생이 있었다면 참 재미있었을텐데.. 후후.
나 구역 스탠딩이었습니다. 무대에서 한 5미터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았습니다. TOOL의 오프닝을 기다리는 동안 무대 스크린에서는 그동안 내한했던 메탈 밴드들의 영상을 짤막하게 편집해서 보여줬습니다. PANTERA!!!!!!!! 다른 공연들은 "나라를 지키느라 바빠서" 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본 공연!! 나 구역 사람들도 Pantera 나올 때 제일 환호성이 크더군요. 그 때 오늘 공연이 빡세겠다는 생각을 좀 했었습니다;;
TOOL의 첫곡이 울리자 다들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미쳤습니다! 제 동생도 미쳤습니다! 한참을 흔들고, 소리지르고, 땀빼고 났더니 TOOL은 "NEXT! METALLICA!!"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시계가 없어서 정확히 모르겠는데 그 때부터 메탈리카의 첫 곡이 울려퍼질 때까지 거짓말 좀 보태서 한 시간쯤 걸린 것 같습니다. 땀은 나지요, 목은 마르지요, 물은 없지요, 사람들은 사방에 가득하지요, 다리는 아파오지요, 허리도 뻐근해지지요, 아주 죽을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동생과 함께 꿋꿋하게 버텼다는거! Tool 노래할 때 살짝 살짝 몸싸움(slamming)하면서 앞으로 와있었거든요. 이제 무대에서 한 3미터쯤 떨어진 곳에 도착했었습니다. 셋팅 중에 킥 드럼 소리가 제 바지자락을 떨리게 하더군요.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메탈리카가 등장했습니다! 전 Blackend이 오프닝곡일줄 알았는데
Creeping Death가 끝나고 한 숨 돌리는 사이, James 형님이 마이크 잡고 얘기합니다. 이 아저씨, 수염을 한 뼘 넘게 길렀더군요. 머리통이 길어보였는데 썩 어울렸습니다. 예의 그 '가지런한 치아'는 여전했구요. "서울에 다시 왔다! 니들도 좋지?!" 뭐 대충 이런 멘트 날려주고 "Give me, F! (관중들, F!) U! E! L!"과 함께 Fuel이 시작되었습니다!! 볼거 뭐 있나요! 달렸지요!!!!
이어서 Wherever I May Roam을 부르더군요. 5집 노래들 중에서 저는 별로 귀에 안꽂히던 노래였는데 꽤 인기가 많은 곡인가 봅니다. 거의 매 공연마다 이 노래는 꼭 하더군요. 어쨌거나 가사도 대충 외우고 있는 노래이다보니 (메탈리카의 노래들은 웬만하면 대충 따라부를 정도는 됩니다. 예에~ 우후~) 목이 터져라 불렀습니다.
다음은 Harvester of Sorrow!!!! 이 노래를 듣게 될 줄이야! 4집에서 One 이외의 노래를 눈 앞에서 보고 들을줄이야!! 볼거 뭐 있나요! 달렸지요!!!! 다음은 Welcome Home (Sanitarium)이었습니다. 수천명이 후렴구를 따라부르는데, 캬아~ 멋졌습니다! 잠시 쉬면서 James가 말합니다. "자, 이번엔 St. Anger에서 한 곡 해볼께. 근데 니들 St.anger 앨범은 샀냐?" 이럴 때는 모두가 "예"할 때 "아니요"하는 사람도 "예!!!!!!!"라고 해줘야 합니다!! 곧 이어 Frantic을 연주하더군요. '프랜틱~틱~틱~톡~톡~톡~'하는 후렴구가 재미있어서 기억하고 있던 노래였습니다. 역시 신나게 달렸습니다. 다만 노래가 좀 길었습니다. 확실히 St.Anger 앨범은... (James 형님, 미안여~)
잠시 후 James 형님이 어쿠스틱기타 앞에 서더니 The Unforgiven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열광의 도가니탕은 흘러 넘쳐 국물이 잠실 경기장 온 사방에 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불렀습니다! 이럴 때 우리 학교 아이들은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아!! 캐안습이야!!"
For Whom The Bell Tolls의 전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작되는 Orion!!!!!!!!!!!!!!!!!!!!!!!!!!!!!!
맙소사! Orion을 라이브 공연에서 듣게 되다니! 그 신나고 재미있고 강렬하고 부드러운 경음악을 들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아예 기타리프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오.리.온. 머리 위에 떠있던 오리온 별자리를 가슴에 박아넣고 싶었습니다! 아아!! 생각해보니 형님들이 이젠 연세가 지긋하신지라 중간에 노래 안불러도 되는 곡을 하나 넣은게 아닐까 싶군요. 그래도 Lars 형님은 드럼치느라 죽어나는건 마찬가지일텐데.. 냐하~
목마르고 덥고 갑갑해서 죽을 것 같았지만 미친듯이 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까지는 장난이었습니다. Master of Puppets!!! 온사방을 헤메이고 다녔습니다. 몸도 부대끼고 점프도 하늘끝까지 했습니다. 땀은 이미 물처럼 흐른지 오래. 땀방울 튀길 시간도 없습니다. 일단 달리고 보는겁니다!!
이쯤에서 동생을 데리고 뒤쪽으로 잠시 빠져나왔습니다. 무대 앞 2미터 - James 형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는 바로 그! - 자리가 아쉬웠지만 계속 있다간 저랑 동생 둘 중에 한 명이 쓰러질 분위기였거든요. 확실히 PANTERA 공연 볼 때보다 힘들었습니다. 앞자리였기도 했고, 몇 살 더 어릴 때이기도 했고;;;
음료수 마시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 동안 Fade To Black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스탠딩 뒤쪽 편으로 공간이 넉넉하길래 Battery는 앉아서 감상했습니다. "캬아, 죽이네!"를 연발할 수 밖에 없더군요.
Sad But True가 나올 때쯤 동생과 함께 다시 스탠딩석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본래 자리까지는 가지 않고 나구역 뒷펜스 근처까지만 갔지요. 거기만 해도 훨씬 여유가 있었습니다. Nothing Else Matters의 전주가 연주되자 발끝에서 전기가 살짝 왔습니다. 당연히 요 노래, 또 끝까지 따라불렀습니다. 노래도 쉽고, 기타 연주하기도 쉽고, 가사도 쉬워서 제가 집에서 통기타로 유일하게 칠 수 있는 메탈리카 노래거든요. 목이 터져라 불렀습니다.
그 후로 One과 Enter Sandman이 연이어 나왔고, 그 두 곡을 부르는 동안 저는 잠시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왔습니다. 미친듯이 뛰어다니고, 쪽팔리도록 머리흔들고, 갈라질 때까지 소리질렀거든요. 어쩝니까. 나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을... ;-p
James 형님이 마지막 인사를 날리고 Lars가 드럼스틱을 던져주고 "Thank you" 하더니 잠시 사라졌습니다. 우린 이미 형님들도 "앵콜"을 준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죽도록 외쳤더니 흐뭇하게 웃으며 말합디다. "고맙다. 서울 다시 오니 좋네. 니들도 좋지? 그럼 이번엔 다음 앨범에 넣을 새 노래 한 번 들려줄께."
그들의 새 노래를 들으며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소한 St.anger보다는 좀 더 듣기좋은 음악들이 나올 것 같더군요. 어쨌든 기대 만빵입니다. 요 노래하고 들어가려나보다..싶었는데 James형님, 기타를 바꿔맵니다!! 그러더니!! "니들 Kill'em all 앨범 샀냐? 산 사람 손 좀 들어볼래? 자, 이제 간다! SEEK AND DESTROY!"
Searching~ Seek and destroy! 라는 후렴구, 미친듯이 불렀습니다. 마지막 곡이라는 생각이 확 다가오자 몸은 더욱 가열차게 움직이더군요. 이러다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뛰고 구르고 머리흔들고 노래불렀습니다.
멤버들, 기타 피크니 드럼스틱이니 하는 것들을 잔뜩 뿌려준 다음 네 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더군요. 참 멋진 형님들이다..싶었습니다. 게다가 Lars였나, James였나,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새 앨범 나오면 우리 다시 한 번 올께~"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조만간 한 번 더 올 것 같더군요. 음화하하하하하
소원성취했습니다. 고3이라는 굴레를 스스로 벗지 못해서 포기해버리고 말았던 메탈리카 첫 내한 공연. 이번 공연에서 원없이 즐기고 한없이 기뻤으니 이제 다 됐습니다. 음하하하하하 뿌듯하기 서울역에 그지없군요.
+ James는 생각보다 훨씬 장대하고 잘생겼습디다. 웃짱 까고보니 문신은 멋졌는데 가리지 못하는 나잇살들..접히기 시작한 뱃살들.. 안습이었어요. Lars는 확 넓어진 이마가 돋보였니다; 투베이스 드럼킥을 여지없이 날려주는걸 보니 그래도 아직 안죽었더군요. 공연 후 스틱 던져줄 때 보니까 무지하게 장난 좋아하는 것 같습디다. Kirk는 "이번 공연은 kirk의 재발견"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 형님, 화면발이 안먹히는지 그동안 비디오로 본 것보다 훨씬 인물이 괜찮더군요. 사람도 순해보이고. 하.지.만. 이 형님도 접히는 뱃살은 어쩔수가 없습디다그려.. 허허허.. Robert는 생긴건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였는데 순해보였습니다. 수줍어 하는건지, 어색해 하는건지 모를 제스추어, 표정들. 다른 멤버들은 공연 끝나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길었는데 - 조냉 멋진 공연이었다, 고맙다, 역시 너희가 짱이다 뭐 이런 멘트들 - 이 아저씨는 "따라해봐~ 헤이~ 우후~"하더니 끝.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