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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놀기

달밤... 그 여유로움....

달 밤

윤오영

내가 잠시 낙향해서 있었을 때 일.
어느날 밤이었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웃마을 김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 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네. 달이 하도 밝기에....."
"음!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찌기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이윽고
"살펴 가우." 하는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돌아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끝/全文)



허망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탓하며,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요즘, 문득 엊그제 본 추석날 보름달이 생각났다. 은은한 달 빛 아래, 그 무엇이 급한 일일까.

자꾸만 스스로를 재촉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달 빛 아래 말없이 농주를 마시던 두 사람을 기억해본다. 최선을 다하되, 한 자락 여유쯤은 간직하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