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학교종이 땡땡땡

아버지의 손

오늘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는 "너한테 할 말이 많다. 너도 이제 알건 알아야지..."라며 말문을 열었다. 거나하게 취하신 티가 역력했지만 아무리 많이 취하셔도 당신이 하신 말들을 또렷하게 기억하시는 분이란걸 알기에 나란히 쇼파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는 여기를 클릭해서 지난 글들을 한 번 보시라.)

친분이 있는 어른들과 내기당구를 해서 이겼다는 이야기를 약간의 흥분을 보태어 자랑하시던 아버지는 당신의 인생을 촘촘히 풀어놓으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숱한 사연들과 그를 둘러싼 다른 가족들과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혼 시절, 외가 식구들과 아버지의 관계들, 나에 대한 출생의 비밀(!)까지..

대부분 이미 알고 있던 일들이지만 오늘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꽤 있었는데 들으면서 내내 '이건 진짜 영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어느새 가슴 졸이는 영화의 주연이 되어 내 옆에 앉아 계셨다.

50년대 생이신 아버지는 내가 알고 있는 우리 나라의 모든 현대사의 질곡들을 직접 겪으며 살아오신 분이다. 그 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어찌나 우여곡절이 많은지 웃으면서 울다가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요즘 우리집 상황이 이래저래 안좋다. 동생은 재수를 했지만 올해에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고 남은 대학들의 합격자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는 원래 몸이 약하셨는데 폐경기를 겪고 계신데다 신장은 수술을 했고 심장도 많이 안좋으셔서 신경쓸 일이 생기면 온 식구들이 긴장해야 한다. 아버지는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시고 계획중인 사업 준비를 위해 몇 년째 쇳덩이들과 씨름하고 계신데 영문과 출신인 아버지가 용접을 해야하는 것부터 힘이 드신다. 게다가 몇 년 전에는 녹내장 판정을 받으셔서 내색은 않으셔도 실명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계신다.

결정적으로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조금 무리를 해서 지금 살고 있는 건물을 지었는데 이게 팔리지 않아서 은행빚이 점점 무섭게 다가온다. 냉정하게 따지고보면 지금 우리집에서 고정적인 수입을 내는 사람은 나 하나. 그나마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를 생활비로 쓰고 있지만 은행빚 갚기도 벅찬 상황이다. 어서 이 건물을 팔아야 하는데, 아버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놈의 노무현 때문에' 팔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복잡해졌단다.

강남에 건물 한 채 갖고 있으면 부자인데 뭘 그러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단다. 나도 제대하고 이 집을 처음 봤을 땐 이제 우리집도 꽤 먹고 살만해 졌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선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조금 더 복잡하게 살고 있는 듯 싶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그 사연많은 인생을 용케도 잘 살아내신 것 같다. 욕심부리지도 않으셨고 남에게 해코지한 적도 없고 도박은 커녕 투기와도 거리가 멀다. 우리 아버지는 늘 식구들을 먹여살려야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고 우리 어머니는 값비싼 외식보다 근사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몇 십년을 살아오시다가 자식들 다 크면 당신들끼리 자식 눈치 안보고 살 방도는 마련해야하지 않겠냐며 큰 맘 먹고 준비하신 게 이 집이었다.

어제 아침 두 분이 크게 다투신 모양이다. 법 없이도 사실 분들이라는 그 흔한 수식어조차 화려할 지경인 두 분이 부부싸움을 하는건 거의 대부분 돈 문제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돈 버는 일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어려서부터 본 두 분의 부부싸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 즐겁고 행복한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지는건 거의 대부분 돈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돈 이야기만 나오면 늘 그렇게 마음이 아파왔으니까. 그래서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걸 우리 가족들이 몸소 겪으며 서로를 지탱해내며 살아왔으니까. (오히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겠지만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때론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때론 격앙된 고함을 지르며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어느 대목에선가 나는 문득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싶었다. 아버지의 손은 어느새 주름이 많이 져있었고, 손끝은 군데군데 기름때가 묻은 채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묵직했다.

"이제 자라. 시간이 많이 늦었다."라며 말을 마치시곤 곧 잠이 드신 아버지. 나는 꽤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동틀 무렵 겨우 잠이 들었다. 조만간 어머니, 아버지께 나도 함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보자고 말씀드려야겠다. 동생과 내가 쓰는 생활비나 용돈만이라도 내 월급으로 해결하면 일단은 조금 도움이 될 터이다. 동생의 등록금이 문제인데 녀석도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으니 거기에 내가 학자금 대출 같은 것들을 알아보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들은 부모님과 상의해보고 내 이름으로 대출을 좀 받아도 되고... 그나저나 운전면허는 또 한 번 미루게 될 것 같다. 대학생 때는 놀고 먹느라 못땄는데. 후후. 사실 뭐 면허증이야 마음먹으면 금방 따니까 차가 필요할 때가 오면 그 전에 따두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부 중 한 사람만 면허가 있어도 좋고. ^^;

다행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부모님께 "어른이 된 자식"으로서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 아버지의 긴 이야기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참 멋지다는 생각부터 든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나는 또 한 명의 사람에게 분에 넘칠만큼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와 함께 웃고 울어줄 숱한 친구들도 있고.

훗날 내 아들(혹은 딸)도 내 손을 잡고서
묵직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