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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놀기

     - 한성기

푸른 불 시그낼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마한 역이 있다

빈 대합실에는
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열차가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만 역처럼 내가 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 김광규

서울에서 속초까지 장거리 운전을 할 때
그를 옆에 태운 채 계속해서
앞만 보고 달려간 것은 잘못이었다.
틈틈이 눈을
돌려 북한강과 설악산을 배경으로
그를 바라보아야 했을 것을
침묵은 결코 미덕이 아닌데
긴 세월 함께 살면서도 그와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한 것은 잘못이었다.



이별 노래
- 정호승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