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봤다. 간만에 씨네큐브에 놀러간 일도 즐거웠고, 가슴 따뜻해지는 영화도 마음에 와닿았으며, 따뜻한 여자친구의 마음에도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했지만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은 지금까지도 선연히 내 가슴에 남아있다. 포스터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있는 여자 배우는 물랑루즈의 스파클링 다이아몬드보다 매력적이었다. (여친의 말에 따르면, 영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자였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할머니 한 분을 제외하곤.) 하지만 영화는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고루 무게를 나누어 주었고, 한층 훈훈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지만 영화는 허황스럽다. 모두가 바라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머리로는 끊임없이 '에이, 그래도 저건 뻥이 좀 심하네'라고 되뇌이지만 가슴은 순순히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더라.
웃으면서 울었다. 똥꼬에 털이 가득날만큼.
순박한 군인들을 보며 웃었고, 그들의 따뜻한 마음씨에 울었다. 외국에서도 군인들은 축구를 좋아한다는걸 알고 웃었고, 애절한 연인을 보며 내 사랑이 고마워서 울었다. 유쾌한 음악에 웃었고, 아릿한 음악에 울었다. 천주교 신자임이 자랑스러워서 웃었고, 부끄러워서 울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또 내 동생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래도 영화관을 나설 땐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 중에 최고 점수를 주련다.
+ 즐거웠던 에피소드 하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도 모두 올라간 후... 조명이 켜지자 앞자리에 홀로 앉아 있던 잘생긴 청년이 뒤돌아 서서 얼마 되지 않는 관객들을 향해 수줍은 듯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사람들은 키득거렸고, 한 수녀님께서 웃으시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화답해주셨다.
멋진 청년 같으니라구...
모두들, "Joyeux Noel! , Merry Christmas!, 행복한 성탄절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