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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여름

불쾌지수가 높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더워서 짜증, 기말고사가 얼마남지 않아서 짜증. 나는 나대로 일에 치여서 짜증, 애먹이는 녀석들 덕분에 짜증. 짜증과 짜증이 만나니 결국엔 벌컥 화가 나게 되고,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강자'에 속하는 나는 '약자'에 속하는 녀석들에게 마구 소리를 지른다. 그래놓고 후회한다. 어설프게 마음을 풀다가 더 짜증나는 상황을 만든다.

업무는 업무대로, 수업은 수업대로, 담임은 담임대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동안 홧병이 났다. 체한 것이 일주일을 넘게 계속되는 것 같아서 한의원에 갔더니 스트레스 때문이란다.
"요즘 신경쓰실 일 있으신가요?"
"지나치게 많죠."
"그래서 이런 겁니다."
희한하게도 온몸에 침을 맞은 지 불과 10여분만에 아프게 조여들던 가슴이 스윽 풀어졌다.

게으르게 지내는 것 같진 않은데 나는 요즘 늘 바쁘고, 늘 피곤하고, 늘 짜증내고, 늘 화를 참는다. 오늘도 한웅큼, 내 심장을 도려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 좋다는 말도 이젠 칭찬 같지 않다. 처음엔 그저 '내가 다 이해하고 넘어가야지', '내가 조금 손해보면 되지뭐'라며 넘어갈 수 있었던 일들도 횟수가 거듭 될수록 견디기 힘들어진다. 나를 이용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서 기분도 매우 언짢아지곤 한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것과 가능하면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지내는 것 중에서 난 언제나 후자를 택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참 힘들고, 어렵고,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도 희미해져간다.

종례 시간에 치마가 짧다고 잔소리를 좀 했더니 나에게 버럭 화를 내던 녀석이 스윽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종례시간에 버릇없게 말해서 죄송해요 요즘 자꾸 예민해져서... 치마는 내일까지 늘려올게요"
그래, 날이 더워서 이런 거겠지. 나도, 남들도, 우리 반 녀석들도 더워서 그런 거겠지.


#. 여친에게 저 문자 얘기를 해줬더니 "귀엽네~"라는 말 끝에 한 마디를 붙여준다.
"그래놓고 치마 안줄이고 그냥 학교가는 게 여학생들이지."
아하. 그렇구나.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