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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國寶)를 찾아라!
내셔널 트레져(이하 '국보')는 보물찾기 영화다. 혹자는 '인디아나 존스가 도시에서 보물찾기하는 영화'라고도 평했다는데, 어쨌든 솜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린 액션스펙터클서스펜스환타지영화다.
(미리 읽으면 영화볼 때 재미가 반감되실수도 있겠지만,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정 걱정되시면 읽지 마세요. ^^;)
보물찾기가 찝찝한 이유 - 1. 지나친 생략
영화전개가 상당히 빠르다. 화면발도 제대로 먹어주고 있다. 벤자민(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의 활약상이 전광석화처럼 스크린을 훑고 지나간다. 멋지다. 속도감도 있고, 스릴도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너무 생략'했다. 미모의 고문서 박사 페터슨(다이안 크루거. 제대로 예쁘다.)과 덜컥 사랑에 빠지는가하면, 수백년동안 묻혀있던 배 안을 제 집처럼 헤집고다니며, 부자지간의 연을 끊었던 아버지는 한순간에 아들과 화해한다.
지나친 설명은 독이 되지만, 지나친 생략 역시 해악이다.
더 찝찝한 보물찾기 - 2. 프리메이슨이 도대체 어쨌다고!!
영국에서 석공들의 길드로 시작된 Free Mason은 이후 수세기에 걸쳐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프리메이슨이 비밀결사조직입네, 음모를 꾸미는 사탄숭배조직입네하는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프리메이슨을 건드린다. FBI국장도 프리메이슨의 회원으로 등장하니까. 쩝.
미국 건국 당시의 수많은 인물이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여러 차례 강조한다. 이후 "프리메이슨"은 영화를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로 숱하게 반복되는데, 문제는 정작 프리메이슨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뭐 미국 사회에서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영화 전반을 떠받치는 프리 메이슨에 대한 '제대로된' 언급이 없어서 전체적으로 김빠진 영화가 돼버렸다. 다만 "절대자와 영생을 믿는 백인 남자"만 가입할 수 있다는 프리메이슨은 미국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고, 영화에서 프리메이슨이 신비하지만 과거부터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해온 단체라는걸 보여주는 것은 확실하다.
가장 찝찝한 보물찾기 - 3. 미국님. 그래, 니들 맘대로 다 해먹으세요.
영화 초반, 힘겹게 찾은 보물선에 보물은 없다. 다만 "독립선언문"에 단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뿐. 벤을 배신한 이안은 그 문서를 훔치자고 한다. 벤은 "그 위대한 문서를 훔칠 수는 없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십수년동안 몰두해온 보물찾기를 그만두려고 한다. 오, 착하고 착한 벤이여.
벤의 착함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 케이츠".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벤자민 프랭클린"과 같은 이름이다. 그 분이 미국을 독립시킨 것처럼 우리의 벤도 미국을 위해 한 건 해주시게 된다. 멋지구나. 벤! 착하다. 벤!
보물찾기를 위한 지도가 미국 독립선언문에 있다는 사실을 안 주인공 일행은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아주 귀한" 그 문서를 결국 손에 넣는다. 왜냐고? "나쁜 악당"에게 지도가 넘어가면 안되니까. 지도를 손에 넣기전, 니콜라스 케이지가 감동어린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독립선언문의 의의"를 설명한다. 비장미가 흘러넘쳐 바닥을 뚝뚝 적실 정도의 그 장면.
독립선언문 자체의 의미를 퇴색시키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새 나라를 세운 그들을 깎아내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늘날 미국이라는 나라가 행하는 작태들을 비추어볼 때, 그 장면에서 주인공의 대사는 영 거슬렸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는데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정의와 진리를 따르기 위해서 때로는 나라를 거역할 필요도 있다" 뭐 이 비스무리한 내용의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주인공은 "그 감동적인 대사"를 멋지게 날린다. - 주인공이 낭독한 그 문장은 거슬리지 않는다. 그 다음이 문제였지.
동료 라일리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벤은 "자유와 진리를 위해서 힘있는 자가 결단을 내려야할 때가 있다"는 식의 대사를 감동이 휘몰아쳐 어찌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뱉어낸다. (대사는 정확하지 않다. 저런 분위기였다는 소리.)
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아닌가? 그렇다. "9.11 테러는 "악한 무리"의 소행이므로, "선한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호"와 "세계 평화 유지"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다"던 그 말. 부스스~한 사람이 내뱉았던 말이다.
누가 너희한테 세계 평화 지켜달라고 한 적 있었니?
이후, 주인공 일행은 미 국회도서관에 간다. "세계 최고의 도서관"이라는 라일리의 설명. 그래, 미국 최고! 만세! 좋겠다, 니들은. 전 세계 중요 문서로 꽉꽉 채워진 도서관도 있고. 멋지네. 그 대사, 스토리 전개와 전혀 상관없는, 없어도 좋을 대사였다.
(링컨기념관 앞뜰에 멋지게 세워진 오벨리스크도 마음에 안들었지만 영화랑 별 상관없으니 통과. 작년 유럽여행 때 유럽 곳곳에 세워둔 오벨리스크를 보면서, 파라오가 하늘에서 보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라고 상상했던 일이 기억났다.)
자, 결말을 한 번 볼까? 중반 즈음부터 팔짱끼고 보다가 결말에 이르러 팔짱을 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맥이 빠져서 풀린 거지만.
주인공 일행은 보물을 찾았다! 정말 엄청나다! (자세한 과정 생략. 보물찾기 과정은 상당히 재미있고, 나름대로 아귀 맞추느라 고생한 흔적도 보임.) 어마어마하다. 전세계에서 긁어모았으니 그 정도되는건 당연하겠지.
우리의 주인공은 너무 멋지게도 그 보물을 전 세계의 원 소유국으로 보내기로 한다. 그의 의견에 FBI 국장님(국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되게 높은 책임자)도 감동하며 동의. 원래대로 돌려주자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는 국장의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프리메이슨 반지.
이 장면에서 벤은 국장과 함께 더블플레이를 하며 다시 한 번 "감동의 소용돌이"를 재현해낸다. 간결하지만 굳은 의지와 감격을 담은 목소리로 "정부가 알아서 잘 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하는 결연한 눈빛의 벤, 그의 말에 '왕도 감당치 못할 것이라는 프리 메이슨의 보물이지만 정부라면 현명하게 처리할 것이다"라며 신뢰하는 국장님.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미국 정부는 "왕도 감당치 못한다는 엄청난 보물"을 원 소유국으로 돌려보낼 것이며, 그에 따른 모든 절차도 충분히 소화해내는 능력을 가진 위대한 정부가 아닌가! 오~! 그래서 그들은 보물을 찾느라 가문의 명예도 팽개치며 부자의 연도 끊어질뻔한 케이츠 가문의 공로를 가상히 여겨, 그들 일행에게 보물의 1%를 나누어준 것이구나. 돌려주려면 다 주던가. 아니면 다 혼자 먹던가. 보물을 모을 때처럼, 나누어줄때도 니들 맘대로 하시는구나. 멋지다.
차라리 호쾌한 보물찾기 영화였더라면...
미국의 주요 건물을 헤짚고 다니며, 미국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이 숨겨놓은 다양한 단서들을 해독하며 보물을 찾는 그 과정은 재미있다. 하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보여주는 방식은 철저히 미국중심적이고, 자아도취된 모습으로 비춰진다.
차라리 전설 속의 보물을 찾는 단순한 액션스펙타클환타지 영화였더라면 나는 즐겁게 2시간 놀았다는 생각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미국 만세"가 곁들여지면서, 나는 씁쓸히 영화관을 나와야했다.
"인디펜던스 데이"를 봤을 때도 찝찝했다. "이라크 침공" 때도 찝찝했다. 부시가 재당선되었을 때도 찝찝했다.
오늘, 후배와 유쾌한 시간을 보내려고 본 영화였지만, 결국 영화관을 나서면서 또 한 번 찝찝해지고 말았다...
+ 아 참, 배급사가 그 유명한 "월트 디즈니"였다. 첫 인트로 화면에서 익숙한 그 로고를 봤을 때, 눈치챘어야 하는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