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 잠도 안자고 TV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라톤 중계 도중, 한 방(!)으로 금메달을 거머쥔 문대성의 호쾌한 발차기를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마라톤이 중반을 치달을 무렵, 25km지점 이후,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이봉주가 슬슬 안타깝기 시작했다. 어쩌랴... 끝까지 응원하는 수 밖에. 이미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는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었고 그는 2위 그룹 선수들보다 무려 40여초 앞서 달리고 있었다.
함께 TV중계를 보고 있던 아버지와 내가 동시에 경악한 것은 리마가 35km지점을 통과할 무렵이었다. 맙소사! 저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왠 치마입은 아저씨 한 명이 리마를 인도쪽으로 밀치는 게 아닌가. 백발 할아버지가 재빨리 잡아채긴 했지만 이미 리마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을 때, 그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반데를레이 리마.
점점 추격을 당해 2위 그룹과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 미친 사람만 아니었다면 금메달을 바라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순간 "올림픽"이 추구해온 정정당당한 선의의 경쟁은 이제 사라진 것인가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리마는 곧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서도 쉬지 않고 달렸다. 앞에서 일어났던 그 엄청난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탈리아 선수와 미국 선수가 그를 추월해 나가기 시작했지만 그는 끝까지 달렸다.
드디어 결승선.
이미 이봉주 선수의 모습은 기대하지 않은 채 오직 리마의 역주만을 바라며 브라운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3위로 스타디움에 입장한 그는 결승선을 눈 앞에 두고 양 팔을 벌리고 이리저리 휘저으며 나는듯 달려갔다. 그는 울고 있지 않았다. 방금 있었던 충격은 이미 떨쳐낸 듯 그는 환하게 웃으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는 아름다웠다. 포기하지 않고 달렸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렸다. 그의 마지막 웃음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만 같다.
내일 아침에는 그 "치마입은 미친 아저씨"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다. 혹시라도 그가 이탈리아인이거나 미국인일 경우, 상당히 격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양태영의 금메달 수여를 놓고 절대부동의 입장을 보이고 있는 IOC에서 이번 사건은 어떻게 풀어나갈지 매우 궁금하다.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
그는 오늘 마라톤의 진정한 승리자였다. 그의 동메달은 스페파노 발디니(이탈리아)의 금메달보다도 값진 것이었으며 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올림픽에 열광하는지, 왜 그토록 많은 선수들이 피땀흘려 연습했던 것인지를 단적으로 알려 주었다.
비록 10위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혼신을 다해 뛰었을 이봉주와 다른 2명의 한국 선수들에게도 박수를 보내며,
리마에게 힘찬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 그 자식, 누군지 정말 궁금하다. 국제적으로 매장당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