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내 생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영국박물관은 아테네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올림픽 관련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로 불려지고 있는 쿠베르탱의 저 말이 유독 눈에 꽂혔다.
"The Olympic Games are for the world and nations must be admitted to them."
내 짧은 영어실력으로 인해 잘못 생각한 것일수도 있지만 저 라는 글자가 눈에 밟혀 기어이 사진까지 찍고야 말았다. 저 글을 본 당시의 솔직한 심정은 "쿠베르탱, 지가 뭔데..."였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제전을 계승하겠다는 그는 프랑스인이었고, "우정과 세계 평화를 목적으로 모이는 순수한 스포츠의 제전"을 표방한다지만 어디서부터 그 "순수"를 찾아야할지 모르겠다.
올림픽 정신 자체는 근사하다. "순수한 스포츠"를 통해 전세계인이 평화롭게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모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꼴찌에게 갈채를"이란 말은 이제 언론들의 의례적인 인사말로 등장하고 있고, 계속되는 부패 의혹과 판정 시비는 올림픽의 이름에 검은 그림자만 드리울 뿐이다.
올해 아테네 올림픽을 보며, 그리스에서는 "Welcome home"이라며 돌아온 탕자를 대하듯 선전했지만, 테러에 대한 불안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고, 판정 시비 또한 연일 터져나왔으며, 끝내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불상사가 터져나왔다.
혼신을 다해 노력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순위를 떠나 '최선을 다해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러한 선수들의 피 땀어린 노력이 약물 시비, 판정 논란, 부패 의혹, 상업성의 과대 증가 등으로 인해 얼룩지고 있다.
문득 얼마전 대학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부(富)"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더라는 뉴스기사가 생각난다. 그 설문조사의 타당성 여부는 심히 의심할 만 하지만 - 수백명의 의견을 전체 대학생의 의견으로 간주하는 것부터가 웃기지 않은가 -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볼 계기가 되었다.
자본주의 아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올림픽마저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상품이 되어가는 듯 하며, 많은 사람들이 정의와 순수라는 가치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아름다운 올림픽은 오늘 마라톤에서 최악의 사태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두 팔 벌려 웃음짓던 리마와 같은 선수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