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준비를 열심히 해가는 날에는 50분이 후딱 간다.3학년 녀석들이야 이젠 능구렁이들이라서 수업 자체에 대한 큰 부담은 없다. 수능 언어영역에 대한 압박이 훨씬 거대하긴 하지만 그건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니까. 문제는 1학년 수업이다. 교사용 지도서의 안내만으로는 활동수업을 계획하고 실행하기가 벅차고, 막상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작은 활동 하나에도 큰 용기(!)와 적지않은 준비가 필요하다.
수업준비를 덜 해가는 날에는 5분이 1시간 같다.
슬쩍 던진 농담에 아이들이 깔깔거리면 신이 난다.
웃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을 때면 진이 빠진다.
기분 좋은 날엔 막 나가는 농담도 그닥 거슬리지 않는다.
기분 나쁜 날엔 아무 말도 아닌데 귀에 박힌다.
졸고 있는 녀석들을 향해 "내 수업이 재미없냐?"라고 물어보는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고, 잡담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수업이 재미있는건 아니라는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결국 "어떻게 가르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어떤 이는 "왜 가르쳐야하는가?"부터 고민해봐야한다고 하지만 학기가 시작된 지금, 수업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한 수업 목적에 대한 고민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지금 몇 가지 생각해둔 게 있긴 한데 생각대로 잘 될지는 모르겠다. 1학년은 입시 부담도 적은 편이고 아이들도 순진해서 다양한 활동수업에 대해 욕심이 생긴다. 2학년만 되어도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기엔 부담스럽더라. "선생님, 그거 수능에 나와요?"라는 질문이 녀석들의 입에서 먼저 던져지는데 지금의 나는 그런 학생들의 외침을 외면하거나 나만의 수업을 이해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급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난 이후의 시간을 이용해서 몇 가지를 시도해보고, 2학기 때 본격적인 활동을 해볼까 생각중이다. 이번 주에 해보려고 계획 중인 것도 몇 개 있는데 아직 반별 특성도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서 자신은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어떤 수업을 어떻게 해볼까 고민해보는건 즐거운 일인 것 같다. 아이들의 졸린 눈보다 웃으며 빛내는 눈동자를 기대한다. 50분 동안의 수업을 끝내고 나오면서 가슴 가득 흐뭇해지는 짜릿함은 교사라는 직업만이 가질 수 있는 값진 매력인 것 같다.
바쁜 한 달이지만 가벼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무거운 고민만큼 내 수업은 한결 가벼워지길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