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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버려줘서 고맙다

참회문1

내 순정에 다쳤을 첫사랑 그대에게.
이제야 그대에 대한 무수한 원망을 내려놓고 비로소 참 많이 미안했었다. 참회할 용기가 난다. 미안하단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난 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자만이 뿌리 깊었나, 아니다 자기연민이 독했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가는 건 주름만이 아니다. 살면서 홍역처럼 반드시 거쳐가야 할 경험과 남과 별다르지 않게 감당했어야 할 상처들이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그대와 주고받았던 모든 것들이 마냥 별스러워 엄살인 줄도 모르고 악을 쓰듯 독하게 킁킁거렸다. 그때 그대는 참으로 냉정했었다. 원망스러웠던 그 순간이 이제야 맞춤맞은 순리였음을 알겠다. 나를 버려주어 고맙다, 그대. 순간 이 글을 쓰며 겁이 난다. 나만큼 설레지 않고 나만큼 애타하지 않고 나만큼 절절하지 않은 그대에게 나는 늘 이런 식으로 상처를 주었다. 잘났나봐, 무시하나봐 그런 직설을 내려놓고, 웃으며 칼주는. 꼬여진 실타래처럼 정말 난감하게 엉켜서 그대를 몰아붙였던 한때를 그대여 지금은 떠올리지 마라. 그리하여 이 글을 읽지 않고 서둘러 덮지마라. 세월이 변하듯 사람도 변한다. 나는 변했다, 그대. 이제 엉킬 기운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들어라, 고맙다, 정말 버려주어.

그대와 헤어져 20년이 흘렀다. 그 20년의 세월 안에서 나는 정말 뚜렷이 알아차린 것이 있다. 진실이나 사실이란 말은 함부로 써선 안 된다는 것, 모든 기억은 내 편의대로 조작될 수 있다는 것. 하여, 이제 내가 말하려는 우리 둘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는 어쩌면 또다시 나만의 기억일 뿐 그대와는 무관한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혹여 내 서술이 그대의 마음과 아랑곳없더라도 웃으며 봐달라. 이 사람은 이리 생각했었구나 하고.

그대가 나를 일방적으로 버린 스무살 겨울, 나는 그대를 배신자로 낙인찍었었다. 매일 전화하고 하루 걸러 한번씩 만나고 서로의 속살도 아닌 드러난 살이 스칠 때에도 머리끝까지 삐죽하던 그 때, 그대는 돌연 모든 걸 멈추었다. 전화도 받지 않고, 편지해도 답이 없고, 만나도 확연히 시들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내 드라마 주인공은 참으로 상대에게 용기 내어 잘도 묻는데 나는 그대에게 묻지 못했다. 내 잘못을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어리석다. 사랑한 대상을 미워할 대상으로 바꿀 오기는 있으면서.

모든 겨울처럼 밤이 깊은 겨울이었다. 며칠째 몇주째 연락이 안 되던 그대를 찾아나섰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얇은 추리닝 바람이었다. 20년간 나는 그때의 내 행색을 다급함이라고 애절함이라고 포장했지만, 이제야 인정한다. 상처주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너보다 순정이 있다. 그런데 너는 나를 버렸다. 그렇다면 무참히 무너져주겠다. 머물러야만 할 사람을 스쳐 지나가겠다고, 네가 상처준 여린 이 사람을 똑똑히 기억하렴. 나는 눈오는 그대의 집 앞에서 밤을 새워 오들거렸다. 그대는 이층 창문 너머로 나를 물끄러미 보다 커튼을 쳤다. 그리고 몇달 뒤, 그대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대학을 갔어. 말해주고 싶었어. 뚝. 그대 목소리는 나에 대한 죄책감으로 작고 의기소침했다. 반면 내 목소리는 얼마나 당찼던가. 잘됐군. 웃음이 난다. 좀더 나중까지 사랑한 게 뭐 그리 대단한 유세라고. 이후의 내 행동은 더욱 우스꽝스럽다. 그대랑 헤어지고 나는 이내 A, B를 만나놓고, 칠, 팔년 뒤 다시 그대를 만나서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라고 말했던 거 같다. 그때 그대는 참으로 나를 안쓰럽게 쳐다 보았다. 그리고 자책했었다. 왜 너는 그렇게 순정적인데, 나는 이 모양이냐고, 지금 사랑하는 누군가와도 나는 또 시들해진다고. 나는 기뻤다. 그대가 나랑 헤어져 계속 휘청대서, 그리고 내가 순정적으로 보여서. 그리고 다시 5, 6년 뒤, 그대를 보았다. 그대는 여전히 휘청대고 여전히 나에게 미안해하고 여전히 또 누군가와 시들한 상태였다. 그때 나는 이제는 우린 친구야 하며 내가 그대를 극복하고 우정으로 승화시킨 단계를 서술하며 넌 왜 그렇게 살아, 좀더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없어하며 훈계하고 의기양양했던 거 같은데 기억하는지. 그리고 다시 5, 6년이 흘러 지금이다.

미안하다, 그대여. 이제야 고백건대, 나는 그대에게 바쳤던 순정을 스무살 무렵에 이미 접었었다. 그런데 왜 말 안 했냐고? 나는 마음이 변하는 게 큰 죄라 생각했다. 그 어리석은 생각은 참으로 오래갔다. 그래서 그대를 괴롭히고 그대보다 나를 더욱 괴롭혔다. 그대와 헤어지고 누군가를 다시 만나서도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그대에게 바쳤던 순정만을 내세우며 유치한 대사를 남발했다. 나에겐 네 자리가 없어, 젠장이다. 그러면서 왜 그들과 여행은 가고, 설레는 눈빛을 주고받고, 짜릿하기까지 했었는지. 그때 나는 그런 아이였다.

그대여,
이제 부디 나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사랑에 배신은 없다. 사랑이 거래가 아닌 이상, 둘 중 한 사람이 변하면 자연 그 관계는 깨어져야 옳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마음을 다잡지 못한 게 후회로 남으면 다음 사랑에선 조금 마음을 다잡아볼 일이 있을 뿐, 죄의식은 버려라. 이미 설레지도 아리지도 않은 애인을 어찌 옆에 두겠느냐. 마흔에도 힘든 일을 비리디 비린 스무살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가당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린 모두 오십보백보다. 더 사랑했다 한들 한 계절 두 계절이고, 일찍 변했다 한들 평생에 견주면 찰나일 뿐이다. 모두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다 괜찮다.

이제 나는 다시 그대와 조우할 날을 기다린다. 그때는 그대와 웃으며 순정을 포장한 가혹한 내 행동들을 맘아프게가 아닌 웃으며 나눌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만약 볼 수 없다면, 잘 살아라, 그대. 그리고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나는 행복하다.


날씨 탓일까. 몸이 지치니 마음도 약해지는걸까. 온 식구가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고, 동생이 수도회 입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일까. 감기 기운도 살짝 스미는 뜨거운 여름날 오후, 문득 노희경이 생각났다.

어설픈 어른 흉내를 내던 대학 새내기 시절, 선배들은 "거짓말" 대본을 돌려 읽었고, MT를 가서도 아침 일찍 티비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드라마 재방송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는 미쳐 몰랐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슬픔과 고민은 나의 삶과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몇 년 후, 지독한 열병을 앓게 되었고, 그 와중에 우연히 눈에 들어온 노희경의 글은 내 가슴을 찌익 그어버린 깨진 유리 조각 같았다.

다행이다. 내가 지금 그녀와 함께 있지 못했다면 여전히 나는 이 글을 온전한 정신으로 읽지 못했을 것만 같다. 어쩌면 나도 20년 후에나 피식 한 번 웃으며 지난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리라.

몸도 마음도 지친 오후, 다시 웃을 수 있는 것은 오롯이 그녀 덕분이다.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