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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종이 땡땡땡

가는 비 온다

빗방울 하나가   / 강은교

무엇인가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오늘은 비가 시원하게 쏟아졌다. 교무실에 앉아 나뭇잎에 후둑거리는 빗소리를 듣다가 오늘 같은 날, 녀석들과 함께 시 한 편, 같이 읽으면 좋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종이에 옮겨적었다. 이 녀석들, 맨날 밑줄치고 동그라미치고, 소재 찾고 주제 찾느라 시 한 편 제대로 읽어본 적 있었을까. 내 탓도 있을게다. 기말고사 진도 빠듯하다는 핑계로 "자, 여기 밑줄쳐봐. 이런걸 뭐라고 하지? 그래, 반어!"라며 떠들어댔으니...

인사를 하고 아무말없이 칠판에 시를 적기 시작했다. 등 뒤로 들려오는 한 마디...
"선생님, 그거 어디다 적어요?"
작품개요 정리해줄 때도 "어디다 적어요?"라며 묻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다.

"이건 적지말고 그냥 한 번 봐."
"왜요?"
"비오잖아? 크아~"

애들이 난리가 났다. 꽃미남 문학 소년이라서 비 오는 날이면 감수성이 예민해진다고 농을 던졌더니 토하는 시늉도 하더라. 느끼하다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 난리 중에 "에이, 그럼 선생님이 직접 써야죠~"라는 녀석에게 윙크를 던지며, "기다려봐. 때가 되면 다 보여줄게. 아직은 쪽팔린다."라고 했더니 또 토하는 시늉을 한다.

지들끼리 떠드느라 내 낭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슬쩍 베껴적는 녀석도 있었다. 그래, 단 한 명이라도 문학을 즐길 수 있게 된다면 그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일인가. 삭막한 세상을 촉촉히 적시는건 비 뿐만이 아닐진대...

나는 아직 두드리고 싶은게 많아서
행복하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